아침을열며·박찬규>귀촌일기-김장 철
박찬규 에코특수가치연구소 이사
2024년 11월 28일(목) 16:58
박찬규 에코특수가치연구소 이사.
벼 수확이 끝난 농촌의 벌판은 평화롭고 편안한 안식처같다. 봄부터 바쁘게 살아온 농부들의 마음 또한 한결 여유롭다. 다만 논농사는 여름도 견디고 태풍이 없어 풍작을 이룰 수 있었는데도 수확을 하기 전에 벼멸구가 창궐하더니 많은 논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대부분의 농가들은 서둘러 농약을 하여 병충해를 예방했지만 나이가 많은 농부들은 시기를 놓쳐 벼멸구 피해가 제법 컸다. 그래도 벼농사는 풍작이라 말할 정도로 수확량에 있어서는 전년 대비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다.

농촌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지만, 김장 철을 맞이하게 된 남도에서는 다시금 농부들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해남은 11월 중순부터 김장을 위한 절임배추 판매에 바쁘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이달 중순부터 김장을 하기 시작해 대부분의 가정에서 김치를 담기 때문이다. 남도에서는 8월 중순부터 배추를 기르기 시작해서 3개월이 지난 이달 중순부터 절임용 배추를 생산한다. 이때가 배추 맛이 잘 들고 김장을 위한 절임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남도는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청정지역으로서 생산하는 농산물 품목마다 대부분 유기농이며 품질 또한 전국에서 으뜸에 속한다. 특히 배추의 경우에는 가을 해풍을 맞고 자라서 아삭한 맛이 일품이며 절임 이후에도 무르지 않고 단단해 수도권에서 인기가 높다. 그래서인지 이달 중순부터는 절임배추의 주문이 전국에서 밀려들어 배추 농사를 하고 있는 농민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해남의 절임배추는 108일을 채운 후에 수확하기 때문에 절임 후에도 단맛과 아삭함을 갖고 있다. 해남의 절임배추는 타 지역의 농가와 다른 점이 바로 1차 절임을 대부분 바닷물로 한다는 것이다. 양식장에서 정수된 바닷물을 확보해 1차 절임을 하게 되면 간이 골고루 배추에 배어 균일한 맛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 완벽한 절임이 되지 않기 때문에 2차 절임은 소금으로 한다. 소금도 당해 연도에 생산되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3년 동안 간수를 뺀 소금을 쓰기 때문에, 쓴 맛을 잡아주어 절임 후에도 배추가 무르지 않고 단단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는 배추 모종을 심어놓고 많은 양의 비가 내려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행히 가을에 일조량이 많아서 수요를 충당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귀촌 후로는 매년 김장을 한다. 언제부터인지 배추밭 고랑에는 재래종 갓이 함께 자라 김장철의 입맛을 돋게 해주는 품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장철에는 주로 생산되는 품목인 배추와 갓뿐만 아니라 텃밭 한쪽 귀퉁이에 다양한 재료들을 심어서 김장을 할 때 수확해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무를 배추 다음으로 많이 심는데 무는 김장하는데 가장 많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재료이다. 무의 파종시기도 배추와 비슷해 3개월이 넘으면 수확을 하게 된다. 올해도 무의 작황이 좋아 김장철에 속재료와 깍두기의 재료로 손색이 없다. 가을에 걸맞는 적정 강수량 덕에 쪽파의 작황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입맛을 돋우는 생강과 당근의 수확도 함께 하여 김장철에 사용할 재료를 미리 준비한다. 농촌의 생활은 벼 수확이 끝나면서 소득이 발생하고 바로 김장철로 들어가면서 한 해를 마무리할 준비를 한다. 귀농·귀촌 후에 어렵고 힘들기만 한 농촌의 하루하루가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는 순간에는 다시금 희망을 갖게 된다. 그리고 겨울동안 가족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김장을 이웃과 함께 하면서 귀농·귀촌의 희망을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