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가을, 어느 멋진 날
임효경 완도중 前 교장
2024년 11월 12일(화) 17:49 |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
어렸을 때는 추워서 움츠러들게 하는 겨울이 가장 싫었다. 가난한 시절이라 따뜻하게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다. 연탄 한 장 아끼려고, 구들장 바람구멍도 한 개만 열어두었던 우리 엄마.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추웠다. 빨간 내복을 껴입고 방한이 되지 않는 나일론 교복으로 그 긴 겨울날들을 나야 했다. 머리를 감으려 해도 물을 연탄불에 데워야 하는 번거로움을 스스로 감내해야 했다. 그래서 긴 머리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단발머리마저도 되도록 짧게 잘라주던 우리 엄마는 어느 날, 추위에 곱은 손 때문이었는지 가위로 내 뒷목에 상처를 냈다. 난 병원에 가 보지 못하고 빨간 약만 발라 자연치유를 하였다. 그리고 흉터가 남았다. 그 때도 겨울이었다.
그래서 내내 여름이 좋았다. 어릴 적 여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으로 여겨지는 계절이었다. 더위를 식혀 줄 차가운 물은 가난한 집 마당에서도, 펌프질만으로도 여기저기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 여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을 제공해 준 계절이기도 하다. 그 사진은 우리 온 가족이 모처럼 광주 북구 임동에서 동구 증심사 계곡으로 피서를 간, 우리 가족의 역사적 행사를 담고 있다. 흐릿한 흑백 가족사진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하얀색 하의만 입은 반나(半裸)차림이다. 물놀이용 반바지는 아니었을 터 다리를 호탕하게 벌린 채, 그냥 자연스럽게 술 한 잔 손에 들고 계곡의 넓은 바위 위에서 젊은 아버지가 활짝도 아니고 슬쩍 웃고 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아버지의, 낭만을 아는 얼굴이다.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아내가 있고 3녀 2남 자식들이 건강하게 학교를 잘 다니고 있어, 어느 정도 안정감을 누리는 젊은 아버지 시절. 그 시절은 여름처럼 뜨겁고 길었을까?
이 나이되어 보니 가을이 좋다. 어느새 나도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어 쓸쓸함이 내 옷의 장신구 같이 느껴지다 보니 이 계절과 동병상련이 있다. 특히, 가을엔 긴 세월 함께 한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 있어 좋다.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여고동창생들과 가을 감성 여행을 다녀왔다. 여수 장도와 돌산 예술랜드를 돌아보고, 순천 와온 해변 마을길과 가야 정원에서 가을 석양을 보고 올 참이다. 퇴직을 해서 더 이상 사무나 일에 얽매이지 않는 친구들, 돌보아주고 있는 손자 손녀들도 오늘 하루는 당당하게 어딘가에 맡기고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소풍을 앞 둔 아이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잠도 설치고…. 우리 가을 여행은 동창들 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모두 인정하는 연례행사이다. 이 정도 호사는 충분히 누릴 수 있게 그동안 가족들 위해 수고한 우리니까. 전세버스를 타고 가는 스물세명의 토끼나 호랑이띠 가시내들은 여고시절의 이름을 서로 부르고, 십대 소녀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버스 안에 유일한 남자인 기사 양반의 정신을 빼놓을 정도로.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니다. 개명을 한 예쁜 이름 수빈이가 아니고 그냥 광순이다.
경아는 여전히 눈을 내리 깔고, 껌을 좀 씹어 본 모습으로 머리에 힘 좀 주고 나타났다. ‘내가 트롯 경연대회에 나가보려 해도, 주변에서 말린다. 학폭에 걸린다고….’ 맞다 맞다!! 박수 치며 공감할 만큼 험한 친구 아니었는데 말이다. 호쾌하고 멋진 친구일 뿐. 숙이는 가을을 닮은 모습으로 와아~~ 감탄의 환호를 받았다. 광주 근교 전원주택에 살며, 장을 담그고, 밭작물을 가꾸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 친구 머리칼은 노오랗고 하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우리를 대표하는 미모였는데, 가을을 쏙 빼 닮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왔다. 깊은 눈매에 어린 우수를 우리 모두 알아본다. 시니어 모델로 손색이 없겠다고 카메라 들고 우루루 그녀 앞에 모여 작품 사진을 남겼다.
란이는 예술가의 풍모를 자랑한다. 베이지색 프렌치코트에 긴 스카프를 걸쳐 입으니 완전 가을 여인이다. 긴 암 투병을 이겨내고 코로나 시기도 국가의 후원으로 버티며 예술혼을 불태우다 보니 10년 만의 재회를 하게 되었다. 화가인 그녀가 마이크 앞에 다시 서서 가을 시 ‘우체국 앞에서’를 읊어 주니. 국화 여인의 향기가 천지를 뒤덮는다.
매년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서로를 마주보며 계절마다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어가는 지를 확인한다. 어린 시절을 같이 겪은 우리는 한 마디로 열 속을 알아본다. 사실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서로 눈을 보고, 손을 잡아보아도 안다. 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니가 얼마나 쓸쓸한지. 그래도 그냥 옛날 10대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니 고맙고, 그냥 서로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으니 고맙다. 가을날 햇살이 따뜻한 날을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눈물이 날 만큼 고마운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10월 어느 멋진 날이 그렇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