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박재항>가을의 두 김밥축제가 보인 가능성
박재항 서경대학교 광고홍보영상학과 교수
2024년 11월 05일(화) 17:30
1일부터 3일까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이벤트 광장에서 열린 ‘2024 전남 세계 김밥 페스티벌&소금박람회‘가 참여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전남도 제공
“대전시의 제1연상으로 기업인 성심당이 나오고, 이어 대전은 ‘빵의 도시’라는 주제로 축제를 거행하고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전-성심당-빵’의 고리가 형성됐다. 김천시가 10월 말에 ‘김천김밥축제’를 개최한다. 대전의 사례처럼 ‘김천(지자체)-김밥천국(기업)-김밥(음식)’의 고리가 만들어질까? 김천시에는 과연 긍정·부정 어느 쪽으로 작용할까? 본인의 평가와 생각을 쓰라.”

김천김밥축제 직전인 지난 10월에 실시한 필자가 진행하는 광고 관련 수업의 중간고사 문제 중의 하나이다. 학생들은 여러 방향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런데 대전과 성심당의 사례를 기준처럼 문제에 기술했던 게 필자의 실수였다. 본점은 물론이고 매장도 대전시에만 있으며, 창립 70년에 가까운 역사와 최근에는 대전역사 매장 계약 연장이 전국민의 화제가 되다시피 한 성심당과 대전의 관계와 비교를 하라고 한 게 무리였다.

그래도 김천김밥축제는 올해 처음 열리는 행사라는 걸 감안하고라도 9월 초 행사 발표가 될 때부터 관심을 모았다. 10월은 축제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 날씨 속에 전국의 지자체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연례 행사로 열리는 만큼 특별하게 화제가 되는 축제를 보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9월 초에 행사 계획을 발표할 때부터 남달랐다.

‘김천’이라고 할 때 ‘김밥천국’을 연상하는 이들의 비율이 높았다. 젊은 층일수록 압도적이었고, 김천시라고 하면 위치는 고사하고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도시의 이름을 대고, 연상되는 것을 묻는 질문은 도시 브랜드 관련 조사를 하면 기본으로 들어간다. 식당 프랜차이즈에도 뒤지는 인지도나 연상이라면 자존심이 상할 법이고, 감추거나 유하게 포장을 해서 발표하기 마련인데, 김천시의 대응은 달랐다. 김천에서 김밥을 먼저 생각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차라리 김밥을 이용하여 김천을 알리자는 발상을 했다. 약점이나 부끄러운 부분을 인정하면서 그로부터 발돋움하는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썼다. 이런 기법으로 유명한 사례들이 있다.

도박과 환락의 도시로 알려진 미국의 라스베가스는 불륜이나 성매매 등 성적으로 타락한 행위와 불법 대출에 더해 눈먼 돈들이 횡행한다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 1990년대에 특히 어린이들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거리들이 많다며, 가족 여행을 위한 도시로 열심히 광고를 했으나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차라리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스런 일들이 일어나는 도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왔고, 그를 반영한 슬로건이 2004년에 나왔다.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일은 라스베가스에 남겨둬라(What happens here, stays here).”

원래 ‘여기’를 뜻하는 ‘here’를 썼으나 나중에 라스베가스를 줄여서 부르는 ‘베가스Vegas’ 혹은 ‘Las Vegas’라고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처음에는 라스베가스에서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용서가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다른 도시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있는 라스베가스로, 부도덕하거나 불법적 행동 이상도 가능한 도시라는 식으로 확산됐다. 이 슬로건과 이를 담은 광고는 21세기 도시 관광 광고의 최고봉으로 다수 광고 전문가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김천에서 김밥천국이 먼저 연상된다는 점 이외에 실상 김천과 김밥은 별 연관이 없다는 게 김천이 김밥을 얘기할 때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밥천국이 전국 모든 도시에 존재하고 있고, 김밥이 예전처럼 소풍 때나 먹는 특별식이 아닌 편의점에서도 먹고, 집에서도 쉽게 먹는 일상 음식이 된 지 오래다. 김밥은 굳이 어느 지방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김밥축제라는 것도 사실 무주공산의 상태였다. 2003년에 통영국제음악제 기간에 충무김밥축제가 열렸으나, 음악제의 부속 행사 형식이었다. 충무김밥이라는 이름 때문에도 다양한 형식의 김밥으로 확산되기 힘들었고, 결국 김밥 자체가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김천에서는 흑돼지, 자두 등의 김천 특산물을 재료로 하는 김밥을 개발하고, 편의점 상품화를 목표로 한다며 김밥쿠킹대회도 열었다. 참관객들의 체험에 특히 무게를 두어서 30여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프랜차이즈의 인지도에 업혀서 출발했으나 자신의 특산물화 작업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충무김밥축제가 처음 열린 2003년, 그보다 앞서 그해 3월에 전남 완도에서 김을 테마로 한 축제가 열렸다. 제1회 김축제라고 하여 ‘김양식 80주년을 기념하고, 김 생산지로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하여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그 축제의 주인공은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80미터짜리 김밥이었다. ‘장보고 김밥’이라고 명명된 김밥의 길이는 2006년에는 206미터로 늘어났다. 주민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으나, 함께 먹기 위하여 200미터 길이 김밥을 만들었을까?

완도의 김축제는 1995년에 먼저 시작된 ‘장보고 수산물 축제’에 합쳐서 거행되었다. 올해 5월에 열린 장보고 수산물 축제에서는 224미터의 해조류 김밥을 만들었다고 한다. 작년 2023년에는 223미터 김밥이었다고 하니, 연도에 맞추는 것 같다. 나름 시의성 있게 성장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김축제는 충청남도 서해안의 보령, 서천, 광천에서 10년 전부터 붐을 이루듯 경쟁하며 거행하고 있다.

각지의 횡행하는 김축제에 맞서, 국내 김 생산의 80퍼센트를 담당한다는 전남이 다시금 ‘김 생산지로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 11월1일부터 3일까지 전남도에서 ‘2024 전남 세계 김밥페스티벌’을 서울 여의도에서 주최했다. 시기가 공교롭게 김천김밥축제 바로 다음 주였다. 시기로나 행사 장소로나 장단점이 있었다. 서울에서 열려 참관 인원이 김천의 두 배 이상이었던 점은 고무적이나, 이를 전남 관광과 지역 브랜드로 연결하는 숙제가 남았다. 소금박람회와 함께 열렸다는 데서, 재료나 근원으로 강화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럴 충분한 가능성을 보였다. 내년 가을에 더욱 풍성하고 흥미롭게 돌아올 두 김밥축제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