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오너 파이팅!”… 지역 e스포츠 열기 ‘후끈’
●2024 롤드컵 결승전 광주 응원전
한국T1, 中BLG 꺾고 최초 5회 우승
팬들, 선수 움직임 하나에 탄성·환호
지역출신 선수 ‘오너’ 우승에 눈물도
“광주서도 롤드컵 경기 볼 수 있기를”
2024년 11월 03일(일) 18:31
e스포츠 팬들이 3일 광주 동구 충장로와 서구 상무지구의 한 영화관에서 ‘2024 롤드컵’을 보며 한국팀의 선전을 응원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염지연 인턴기자
“T1 우승을 바라며 오는 길에 쓰레기를 주웠어요. 오늘만큼은 ‘착한 일 하면 우주의 기운이 온다’는 미신을 믿고 싶습니다.”

세계 최대 e스포츠 대회인 ‘2024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이 열린 3일 자정께 광주 곳곳 극장가는 한국팀 T1을 응원하기 위한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늦은 시각이 무색하게도 현장의 모든 상영관이 전석 매진되는 등 롤 팬들의 뜨거운 열기가 돋보였다.

롤드컵은 게임 운영사 라이엇게임즈가 지난 2011년부터 해마다 여는 글로벌 e스포츠 대회다. 축구의 ‘월드컵’에 빗대 일명 ‘롤드컵’으로 불린다. 동시 시청자 수가 1억명을 돌파하는 등 e스포츠계에서 가장 큰 행사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5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 T1이 우승한 바 있다.

T1은 이날 영국 런던 O2아레나에서 중국팀 빌리빌리게이밍(BLG)을 상대로 5전 3선승제 결승전을 치렀다. 호남권역에서는 라이엇게임즈와 협약을 맺은 CGV 3곳(광주금남로·광주터미널·광주상무점)에서 공식 응원전이 개최됐다.

최종 우승팀의 탄생을 보기 위해 지역 곳곳에서 온 팬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e스포츠계의 살아있는 전설 ‘페이커’ 이상혁의 유니폼을 입고 온 팬들과 T1의 빨간 응원봉·머플러 등을 착용한 이들이 눈에 띄었다.

전북 전주에서 방문한 연인 김산들·박하원씨는 “지인들에게 ‘롤커플’로 유명하다. 지난해 한국 롤드컵 때는 현장에 찾아가 응원했었다”며 “시간·거리가 꽤 걸리지만 이번에도 한국팀의 우승을 응원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직관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롤팬들과 함께 응원전을 펼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활짝 웃었다.
3일 자정께 광주 한 영화관에서 선수 유니폼과 리그오브레전드 캐릭터 모자를 쓴 관객들이 롤드컵 결승 응원전을 앞두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성현 기자
경기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대형 스크린 위로 펼쳐진 선수들의 모습에 연신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국팀이 실점할 때면 ‘어~어~! 제발!’하며 초조해 하는 모습도 보였다. 경기 후반 T1이 패·승·패로 탈락 위기에 몰리자 한 팬은 큰 소리로 “파이팅! 5꽉(5판)가자!”고 외치기도 했다. 다른 관객들도 저마다 선수 유니폼을 망토처럼 걸치는 등 T1의 우승을 간절히 염원했다.

팬들의 바람이 통한 것일까. T1은 시리즈 막판 신들린 실력으로 2승2패를 달성,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역대 최초 5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세계 정상에 오른 순간이었다.

한국팀이 보여준 저력에 관객들의 환호는 끊이지 않았다. 극장에는 한참 동안 함성과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페이커 이상혁 선수와 광주 북구 출신 오너 문현준 선수가 있었다.

4시간 넘게 이어진 혈전을 지켜본 팬들은 저마다 ‘감동의 여운’을 감추지 못했다.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짓던 안프레디(영국·32)씨는 “대학원을 한국에서 다니고 있다. 고향서 수년 만에 열린 롤드컵을 대신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며 “T1이라는 팀은 전세계 모두가 동경하는 e스포츠 구단이다. 유럽 팀이 결승에 올라가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들(T1)의 우승을 직접 본 것에 만족한다. 가슴이 요동치는 밤”이라고 평했다.

북구민 김지우(24)씨는 “젠지·한화·담원 등 모든 한국팀이 일찍 토너먼트를 마감했다. T1이 한국의 자존심을 지켜줘 고맙다”며 “선수단 중 문현준 선수가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지난해 롤드컵 우승 당시 모교 동신고 주변에 ‘우승 축하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2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해 줘 같은 지역 사람으로서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일부 팬들은 ‘현장감을 위해 차후 광주에 롤드컵이 유치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2년 연속 롤드컵 응원전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상균(26)씨는 “조선대에 전국 최대 규모 e스포츠경기장이 있다. 시설도 정말 좋다”며 “오늘 대형 스크린 밑에서 응원을 해보니 현장감이 장난 아니다. 다음에 한국에서 롤드컵이 열린다면 꼭 지역에서 직관하고 싶다. 광주가 지역에 있는 인프라를 꼭 활용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광주는 지난해 초 롤드컵 경기 유치를 적극 추진했지만 교통·인프라 등 복합적인 이유로 아쉽게 최종 탈락했다.

광주시 문화산업과 관계자는 “지역민들이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 지 잘 알고 있다”며 “부족한 부분을 메워 다음 롤드컵 유치(2028년 예정)에는 꼭 성공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3일 자정께 광주 한 영화관에서 ‘2024 롤드컵 결승전’이 열린 가운데, 팬들이 우승팀 T1의 인터뷰를 시청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