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쌩 달리는 차에 아찔···‘노인보호구역’ 유명무실
광주 58곳 지정 불구 안전 위협
단속장비 미설치 과속 주행 빈번
불법 주·정차 차량들 도로 점령
65세 이상 보행자 사고 증가세
市 “안전시설 확대해 보호 강화”
2024년 10월 27일(일) 18:30
지난 24일 오후 광주 동구 대인동의 노인보호구역에서 차량들이 제한 속도를 넘기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정상아 기자
광주 도심 곳곳에 노인보호구역 58곳이 지정돼 있지만 일부 노인보호구역은 무단으로 주차된 차량과 미흡한 안전시설로 인해 보행자들의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광주에서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가 매년 증가하면서 안전 관리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4일 오후 광주 동구 대인동의 한 이면도로에는 ‘노인보호구역’이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주행 중인 차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인근 가로등에는 ‘노인보호’, ‘불법 주·정차 CCTV 단속 중’ 등 노인보호구역임을 알리는 안내표지판이 설치돼 있었음에도 제한속도인 시속 30㎞를 넘기며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량이 대부분이었으며, 제한속도에 맞춰 주행 중인 차량을 항해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도 더러 있었다.

인근을 지나던 노인들은 경적에 화들짝 놀라거나 빠르게 달려오는 차량에 당황해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24일 오후 광주 북구 중흥동의 한 노인보호구역 왕복 2차선 도로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정상아 기자
같은 날 광주 북구 중흥동의 한 노인보호구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는 천수경로당 등 노인복지시설이 마련돼 있지만 노인보호구역 시행 취지가 무색하게 고령 보행자를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근 왕복 2차선 도로에는 고령 보행자 보호 지정 구역임을 알리는 노면 표시가 있었지만 도로를 차지한 불법 주·정차들에 의해 표시 일부가 가려지면서 무용지물이었다.

또 무단 주·정차 차량이 도로를 점령하면서 정체를 빚기도 해 이곳을 지나는 차량 운전자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주민 최모(53)씨는 “경로당 주변 주택가라 노인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인데, 차들이 도로를 차지하다 보니 항상 불안하다”며 “길을 건너려고 할 때면 주차된 차에 시야가 가려져 주행하는 다른 차랑과 부딪칠 뻔한 적도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민원이 많이 제기되면서 지자체에서 현수막을 게시하고 단속을 강화한다고 밝혔지만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며 “단속 장비를 마련하거나 안전시설을 추가 설치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7일 광주시와 광주경찰에 따르면 지역 내 노인보호구역은 모두 58곳이다. 자치구별로는 동구 6개, 서구 14개, 남구 9개, 북구 12개, 광산구 17개다.

노인보호구역은 지난 2008년 인구 고령화로 만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 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노인들의 안전한 보행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다만 대부분의 노인보호구역에는 노면 도색과 안내 표지판이 설치돼 있을 뿐 별도의 단속 장비가 없어 노인들의 보행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광주시는 노인보호구역 과속 차량을 적발할 수 있는 단속장비 설치를 경찰과 논의하는 한편 스마트 횡단보도 설치 등 안전시설을 확대해 보호 강화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노인보호구역을 알리는 노면 표시를 주기적으로 점검해 글자나 차선이 흐릿한 경우 재도색을 하고 표지판 설치·관리에 나서고 있으며 무단횡단을 방지하기 위해 울타리 설치 등 추가 안전시설을 마련하고 있다”며 “지난 2021년 기본 계획을 수립해 사고 다발 구역에 스마트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있다. 현재 23개소의 스마트 횡단보도 중 노인보호구역에는 2개소가 설치돼 있으며 올해 안으로 2개소를 추가 마련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 3년간 광주의 65세 이상 노인 무단횡단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21년 58건(사망 2·부상 57명) △2022년 79건(사망 7·부상 72명) △2023년 89건(사망 6·부상 84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