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조재호>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 문흥초 식물도감-보는 법의 교육
조재호 교사
2024년 09월 08일(일) 17:38
조재호 교사
“수업 중에 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나요? 우리 아이 열등감 느끼잖아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받아쓰기 테스트 하지 마세요!” “틀린 것 빗금 치지 마세요. 우리 아이 기분이 나빠져요!”

얼마전 교원노조 윤미숙 선생님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꺼낸 ‘민원’들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 교사들에겐 이런 민원은 별로 놀랍지 않지요. 오히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더 논란이 된 것 같아요. 작년 9월 4일, 공교육의 멈춤의 날이었습니다. 별로 바뀐 것이 없다고 여기는 선생님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저는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을 이해하는 편입니다. 아이가 사회를 닮듯, 학부모도 우리 사회를 닮기 때문입니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고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분노를 잃어버린 사회입니다. 그냥 짜증만 내는 사회지요. 분노와 짜증은 다른 것입니다. 짜증은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상태에서 투덜대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버스가 늦게 오냐, 왜 인터넷이 이렇게 느리냐, 심지어 왜 비가 오냐 등등. 어쩔 수 없는 일에도 그저 투덜대는 겁니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대상(만만한 대상)을 찾아서 칭얼대는 것이지요. 이에 반해 분노는 “중단시키는 힘”이며, “현재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는 대개 분노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성장, 그 전체를 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하는 ‘말’에 부모는 즉각 ‘반응’하지요. 마치 컴퓨터 게임의 충동에 이끌려 밤을 세우는 중2 처럼. 왜 그럴까요? 우리 학부모님들이 너무 바빠서 아닐까요? 우리 사회는 너무 바쁩니다. 학부모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경제적 문제입니다. 성과를 압박하고, 모든 것을 “할수 있다”고 스스로를 사회구성원들을 몰아댑니다. 그래서 과잉행동, 과잉긍정 속에서 누구도 ‘충동제어’를 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어린 생명체를 제대로 자세히 본적이 없을 겁니다. 자기 자식마저 제대로 볼 능력을 상실시키는 사회입니다.

니체란 철학자는 “교육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가지 과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보는 법, 생각하는 법, 말하고 쓰는 법이라고 했다 합니다. 학교에서 ‘말하고 쓰는 법’은 배운 듯 한데, ‘보는 법’을 배운 적이 있던가요? 전 ‘보는 법의 교육’이란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2019년 문흥초에서 근무할 때 함께 했던 동료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은 작은 체구, 말이 없으셨고, 조용히 미소를 짓던 선생님 이셨지요. 초 4학년 과학 과목에 교육과정상 식물의 구조가 처음 나옵니다. 직접 강낭콩을 기르며 식물의 ‘한살이’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문흥초 4학년들은 과학시간이면, 교실 바깥으로 나갑니다. 모둠별로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학교에 있는 식물을 찾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식물을 ‘찾고’, ‘바라보고’, ‘자세히 살펴보고’, 손으로 그것을 그려봅니다. 그 과정에서 식물의 이름을 알고, 구조들(꽃, 줄기, 잎)을 파악합니다. 선생님은 학생의 ‘작품’을 피드백 하십니다. 그리고 학기가 끝날 때 책을 한권 출간하셨습니다. ‘문흥초등학교 식물도감’, 지은이는 문흥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 입니다.

오늘 그 아름다운 책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지, 그 선생님, 김성은 선생님이 정말 훌륭하셨다, 그분의 교육방법이 훌륭했다는 것을 말씀 드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보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았나, 그래서 ‘분노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 때문입니다. 공교육 멈춤의 날, 이젠 교사들도 문흥초 어린이들이 식물을 바라보기 위해 멈추었 듯, 잡동사니, 충동적인 교육 정책들에 대해 ‘멈춤’을 선언하고, 초연히 아이들을 바라만 보고 조용히 그려내는 것이 진정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