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장흥의 문학적 전통, 기산마을과 팔문장 이야기
●장흥 기산마을
백광홍·백광훈 등 팔문장 배출
관서별곡 조선 기행문학의 시작
작품 기념하는 시비·벽화 세워져
2024년 09월 05일(목) 17:41
기산마을 전경. 마을이 사자산 아래에 둥지를 틀고 있다.
시비 ‘관서별곡’. 시비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 샘. 아랫샘과 윗샘이 있다.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 했다. ‘장흥에 가선 문장(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전라남도 장흥은 백광홍과 백광훈 등 많은 문장가를 배출했다.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등 내로라하는 현대문학 작가도 즐비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장흥군을 문화관광기행특구로 지정했다. 장흥은 문림고을로 통한다.

장흥에서도 문장을 대표하는 마을이 사자산 아래 기산(岐山)마을이다. 중국 주(周)나라 도읍 기산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이름 붙었다. 기산마을은 ‘팔문장마을’로 통한다. 문장가 8명이 난 데서 비롯됐다. 8명은 백광홍, 백광훈, 백광안, 백광성, 임회, 임분, 김윤, 김공희를 일컫는다. 기산마을 출신 문장가들이라고 ‘기산팔현’으로도 불린다.

맨 앞자리를 기봉 백광홍(1522~1556)이 차지한다. 백광홍은 1553년 명종이 연 시회에서 당당히 장원을 차지했다. 임금 앞에서 쓴 시가 ‘동지부(冬至賦)’다. 음양의 기운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이치를 절기에 빗대 노래한 작품이다.

백광홍은 부상으로 15권 10책의 ‘풍아익(風雅翼)’을 하사받았다. 풍아익은 당시 널리 읽힌 시학(詩學) 교과서다. 지금은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돼 있다.

기산마을 입구에 ‘팔문장 전통문화마을’ 표지석과 함께 ‘동지부’가 시비로 세워져 있다. 마을의 자랑이다. 백광홍은 가사문학 작품 ‘관서별곡’의 작가이기도 하다.

관동별곡은 많이 들어봤는데, 관서별곡은…. 관동별곡(關東別曲)은 송강 정철이 지은 가사문학 작품이다.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해 관동팔경을 돌아보면서 빼어난 경치와 감흥을 표현했다. 1580년에 지었다. 기행가사의 백미로 꼽힌다. 교과서에서 배웠다.

관서별곡(關西別曲)은 백광홍이 평안도평사로 부임하는 길에서 느낀 생각과 관서지방의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여정과 함께 현지에서 보고 들은 것, 감상이 드러난 기행가사다. 1555년에 지었다. 우리나라 기행가사의 첫 작품이다.

‘관서 명승지에 왕명으로 보내시매/ 행장을 다스리니 칼하나 뿐이로다./ 연조문 내달려 모화고개 넘어드니/ 귀심이 빠르거니 고향을 생각하랴.’

관서별곡 여덟 문단 가운데 첫 문단이다. 왕명을 받고 임지인 관서지방으로 떠나는 단출한 차림을 읊었다.

‘관서별곡’이 ‘관동별곡’보다 25년 앞서 나왔다. 정철의 ‘관동별곡’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관서별곡은 관동별곡의 그늘에 가려져 왔다. 브랜드 파워의 차이일까?

백광홍은 ‘관서별곡’을 지은 이듬해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짧은 생을 산 백광홍이지만, 조선 팔문장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지금은 기양사(岐陽祠)에 배향돼 있다. 기양사는 기산마을에 있다.

기산마을 뒤편에 봉명재도 있었다. 봉명재(鳳鳴齋)는 당시 사설 교육기관이다. 백광홍이 공부한 곳이다. 당시 봉명재에선 신숙주의 증손자 신잠이 유배와 머물면서 후학을 가르쳤다. 봉명재는 1960년대까지 서당으로 운영됐다.

백광홍의 동생 백광훈(1537~1582)도 빼어난 문장가다. 그는 최경창, 이달과 함께 당나라풍의 시를 많이 지어 ‘삼당시인’으로 불렸다. 백광안, 백광성도 같은 수원백씨 가문 사람이다. 한 가문의 네 문장가라고 ‘일문 사문장(一門 四文章)’으로 통한다.

‘팔문장 전통문화마을’ 표지석이 세워진 마을 입구에서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에 시비가 줄지어 서 있다. 기산팔현의 작품을 담은 시비다. 행정안전부의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세웠다. 기산팔현 이야기와 옛 추억을 담은 담장 벽화도 돌담길을 따라 그려져 있다.

옛 문장가들이 거닐던 마을길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을에 세워진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소머리와 표고버섯이 그려져 있다. 장흥이 한우와 표고버섯의 고장임을 알려준다.

몸집을 불린 감과 대추도 초가을 볕에 단맛을 더해가고 있다. 돌담을 덮은 사위질빵 꽃도 어여쁘다. 사위를 아끼는 장모의 마음결처럼 곱고 화사하다. 그 옆으로 닭 오줌냄새 난다는 계요등도 꽃을 피우고 있다.

마을에 샘이 두 군데 있다. 윗샘과 아랫샘이다. 물이 깨끗하면서도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가뭄이나 홍수 때도 수량이 한결같다. 샘물이 끓듯이 솟아오를 때 떠 마시면 만병이 치료되고, 부자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옛날에 하반신을 못 쓰는 장애인이 왔다가 걸어서 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회자된다.

마을 뒤편 산자락에 들어선 로하스타운(Lohas Town)도 ‘한마을’이다. 로하스타운은 민관이 함께 조성한 은퇴자 휴양마을이다. 문화와 의료, 교육, 소득기반을 두루 갖추는 자립형 생태휴양마을을 그리고 있다. 그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장흥 통합의료한방병원도 사자산 자락에 들어와 있다. 병원은 원광학원이 장흥군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1층은 온열암치료실, 골밀도·체지방측정실, CT 및 엑스레이실, 진단검사실, 운동재활치료실 등을 갖췄다. 2층엔 임상시험센터, 한의과·의과 진료, 동서의학 통합진료, 난치질환 통합치료, 척추·관절 통증치료실, 내시경·초음파실, 민간요법·대체요법실 등이 들어서 있다. 3층과 4층은 25실 100병상의 입원실이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전라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