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위기의 쌀 산업
이용환 논설실장
2024년 09월 05일(목) 17:33
이용환 논설실장
“소쩍새야 소쩍새야/솥이 작아 밥을 많이 지을 수 없다지만/올해엔 쌀이 귀해 끼니 걱정 괴로우니/솥 작은 건 걱정 없고 곡식 없어 근심일세.” 조선시대 문인 장유는 누구보다 백성을 위했던 선비였다. 정주학 일변도의 조선 유학을 비판하고 병자호란 때는 주화론을 주장해 전쟁의 고초를 피해갔다. 백성들의 배고픔도 안타까워 했다. 솥이 작다는 의미의 ‘솥적’을 소쩍새라는 한자의 음훈으로 표현한 그의 시 ‘정소(鼎小)’는 흉년을 맞은 농민의 처지를 실감나게 그린 작품이다. 철없는 소쩍새는 솥이 작다고 푸념하지만 뒤주를 박박 긁어도 쌀 한 톨 찾기 어려운 농민의 처지가 딱하기 짝이 없다.

우리 조상들에게 쌀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이었다. 쌀이 있으면 모든 것을 살 수 있었고, 재산의 많고 적음도 쌀이 척도였다. 그들은 또 쌀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단지에 쌀을 채우고 대청에 모신 것이나 단지를 매년 햅쌀로 채웠던 것도 그 안에 신의 복(福)이 있다고 여겨서였다. 정초에 쌀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해산을 앞두고 산미(産米)를 준비했던 것 역시 쌀과 신과 복을 하나로 본 데서 비롯된 풍습이다. 시인 김지하가 ‘밥은 하늘’이라고 했던 것도 쌀에 대한 우리 민족의 남다른 애정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귀한 쌀이 천덕꾸러기가 됐다. 해마다 남아도는 쌀로 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농민들의 아우성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당장 통계청 조사결과 산지 쌀값은 지난 달 80㎏ 한 가마에 17만 8476원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수확기와 비교하면 20% 가까운 하락이다. 쌀 소비량도 급감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평균 56.4㎏으로 30년 전보다 절반가량 줄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정부도 제발 벼농사를 줄여달라며 안달하고 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광주와 전남을 비롯한 전국 농협이 재고 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창고마다 2023년산 재고 쌀이 ‘천장을 뚫고 나올 만큼’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소비감소와 매년 들어오는 수입쌀 때문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쌀 개방 유예 조건이던 쌀 의무수입이 끝났지만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40만 8700톤의 쌀이 수입되면서 쌀값 폭락을 불러오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동력은 벼농사와 쌀이라는 원형질 문화에서 나왔다.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나락 종자를 베고 죽는다’던 우리의 쌀 산업, 5000년을 이어온 우리 문화의 근간마저 뒤흔드는 쌀 산업의 위기가 안타깝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