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디지털 페르소나
김은지 취재2부 기자
2024년 09월 02일(월) 17:43 |
철학용어로는 이성과 의지를 가진 개별적 존재자, 현대에 와서는 ‘가면을 쓴 인격’,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뜻한다.
그리고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해진 요즘, 나 자신도 몰랐던 ‘디지털 페르소나’가 스크린 너머 누군가의 유희거리로 이용되고 있었다.
최근 특정인의 얼굴 이미지에 음란물을 불법 합성한 ‘딥페이크(Deep Fake)’로 인한 디지털 성범죄가 화두로 오르면서 대학가는 물론 학원가까지 들썩이고 있다.
딥페이크 범죄의 타깃은 더이상 유명인들이 아닌 평범한 ‘우리’였고, 그 수위는 개인의 일상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누구나 쉽게 게시할 수도, 볼 수도 있는 일상적인 사진들이 범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일부 시민들은 SNS 사진을 삭제하는 등 공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공지능(AI)의 상용화가 시작되던 시기부터 우려를 샀던 영역이기에 관련 법도 이미 마련돼 있다. 지난 2020년 6월 신종 디지털 범죄로 딥페이크 영상물이 활개를 치자 관련 법이 도입됐다. 현행법에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허위 영상물 등의 반포 등)에 따라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음란물을 제작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딥페이크 영상물은 여전히 신고도, 처벌도 어려운 실정이다.
공개된 사진을 범죄수단으로 사용하는 만큼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범죄 특성상 가해자 특정과 처벌 조항 적용이 어려워 수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각지대를 교묘히 피한 범죄자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몇번의 터치만으로 수많은 ‘디지털 페르소나’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편안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룩한 기술의 발전이 더 이상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단호하고 엄정한 형사제재가 필요하다.
하루 하루 빨라지는 기술의 발전에 맞춰 진화하는 성범죄 양상을 근절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경찰, 지자체를 비롯한 정부 역시 이제 모니터링에 의존하던 소극적 대응에서 탈피해 법과 제도 내에서 범죄를 원천차단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해당 범죄에 대해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