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암울한 ‘헬조선’… 흙수저의 처절한 씁쓸함
장건재 감독 ‘한국이 싫어서’
2024년 09월 02일(월) 17:00
장건재 감독 ‘한국이 싫어서’. (주)엔케이컨텐츠 제공
장건재 감독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주)엔케이컨텐츠 제공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누가 했을까.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여주인공 계나(배우 고아성)가 이 말을 들으면 한바탕 신랄하게 쏘아 붙였을 것 같다. 계나의 일상은 고통스러운 출근전쟁으로 시작한다. 해가 뜨지 않은 캄캄한 새벽에 인천의 마을버스를 타고 열두 정거장을 경유한 후에 지하철 1호선을 탄다. 신도림역에서 다시 2호선으로 환승 후 강남역까지 간다. 점심 메뉴는 부서장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야 하고, 원리원칙을 따르면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회사 분위기에 표류할 뿐이다.

계나는 자신이 톰슨가젤 같다 생각한다. 표범의 공격으로부터 도망가는 가젤의 무리에서 꼭 옆으로 튀어 나오는 한 마리가 있는데, 결국은 표범의 표적이 되고 만다. 그 튀는 가젤이 경쟁력 없는 자신과 같다 생각하는 것이다. 집안 형편은 남자친구 지명(배우 김우겸)의 가족을 만나고 나서 더욱 초라해지고 비참하다. 고단한 현실에 결혼과 출산을 강요받는 사회적 압박 또한 계나에게는 무의미하다. 퇴근전쟁을 치른 후 귀가하면 재건축을 앞둔 집은 고장난 보일러를 고치지 않아 춥기 짝이 없다. 이래저래 계나는 춥고 고단한 한국이 싫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이, 자신이 처한 환경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한국 밖으로, 햇볕 따사로운 뉴질랜드로 떠날 생각을 한다.

언제부터 한국인에게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기준이란 것이 생겨났을까?. 30세 전에는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하고 결혼 전에 1억에 가까운 돈을 모아야 하며, 30대 초·중반에 결혼을 해야 하는 등등이 그러하다. 그렇게 하면 정상적인 현대인으로서 ‘평균’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안정적으로 속한 것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 영화에서처럼 ‘경쟁력 없는 인간’으로 느껴진다니… 이건 더 큰 일이다. 인생에 모범답안이 어디 있겠는가?. 기준에서 벗어난 경쟁력 없는 인간이라 생각하면서 슬프고 불행하고 허둥댈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친구의 시각이 있었다.

“너희 한국 사람들에게는 인종에 대한 계급이 있더라. 맨 위에 뉴질랜드 백인, 그 아래 일본인과 한국인, 그 다음 계층은 중국인, 맨 아래에 동남아인으로 분류를 하는데. 이곳 뉴질랜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그들에게 분류란 영어 하는 아시아 인과 영어 못하는 아시아 인으로 구별할 뿐이야.”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자본주의적 계급 의식이 어디에서든 무의식적 작용을 하고 있다는 건가? ‘금수저 vs 흙수저’란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우리 사회의 곪은 문제를 들킨 기분이었다. 계나의 남자친구가 금수저로서 어려움 없이 사회인의 대열에 흡수될 때 계나는 흙수저로서의 처절한 씁쓸함을 맛보며 살았다면,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힘든 알바 인생을 살지만 한국의 직장인이었을 적과는 표정이다르다. 그녀는 그저 “춥고 배고프지만 않으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추위를 싫어하는 남극의 펭귄이 필사적으로 남극을 탈출하듯 그녀는 계급의식으로 옥죄는 한국 사회의 냉랭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뉴질랜드 행을 택한 것이다. 뉴질랜드라 해서 천국은 아니다. 이방인으로서 이러저러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에 이민 가구인 한인 일가족이 죽는 일은 불안증이 심해진 남편으로 인한 사건임을 유추하게 한다. 그럼에도 계나가 다시 뉴질랜드로 떠나는 데에는 그녀만의 이유가있다.

영화의 원작은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2015)다. 당시로서는 한국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정치적 환경이 있었다. 한국을 ‘헬 조선’이라는 나라로 일컫는 풍자와 자조 섞인 이야기가 유행하면서 세월호 사건으로 촉발된 자발적 촛불시위를 앞둔 암울한 시대였다. 장강명 작가의 날카롭고 경쾌한 톤이 2030 청춘의 아픔을 톡톡 튀듯 묘사, 그들의 이야기를 경유하면 한국 사회가 보이게끔 장치한 소설이다. 장건재 감독은 2016년부터 시나리오를 만들기 시작하여 35고에 이르기까지 영화로 생산하질 못했다. 그러는 동안 원작과의 거리가 생겨났다. 원작만큼 경쾌하지 못한 것은 당시의 이민자들이 갖는 결이 다르고 유학생들이 갖는 온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감독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멀어진 꿈과 희망을 쫓는 2030 청춘들의 고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주요 에피소드를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왔는데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적 상황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감독은 원작이 갖는 사회적 고찰보다는 개인의 정체성 찾기에 더 주력해서 계나의 마지막 선택을 다르게, 열린 결말로 이끌어냈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