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배달원’ 이매리…고려인마을 이주사 그리다
예술공간 집 ‘그들은 우리가 된다’
광주비엔날레 기간…인류사 조명
‘이민자의 물건들’ 등 세 개 섹션
예술로 포용과 공감의 시선 제시
2024년 09월 02일(월) 15:22
이매리 작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 예술공간 집 제공
인문학적 시각으로 인류의 근원을 고민하는 ‘시(詩) 배달원’ 이매리 작가가 오는 4일부터 갤러리 예술공간 집에서 특별기획 초대전 ‘그들은 우리가 된다(They Become Us)’를 연다. 국내외 이력을 자랑하는 중견작가로서 광주에서 여는 4년 만의 전시임과 동시에 9월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기간에 발맞춰 더 깊어진 시각을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에게 공개한다. 특히 광주의 현존하는 인류 생태계 ‘고려인마을’을 관찰, 그들의 이주사를 추적하며 공동체를 향한 포용과 공감의 시선을 그려낸다.

전시명 ‘그들은 우리가 된다’는 유발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그들’에서 ‘우리’로 향하는 작가의 시선을 포괄적으로 대변한다. 이매리 작가에게 광주는 삶의 터전이자 작품 활동의 기반이 된 곳이다. 이러한 광주에 형성된 큰 공동체라 할 수 있는 ‘고려인마을’이 이번 전시의 모티베이션(Motivation)이 되었다. 이처럼 전시명은 고려인 동포와 광주의 원주민들을 가리키고 있다.

‘고려인 마을’은 현재 행정구역상 광주시 광산구 월곡 2동이다. 2004년부터 소수의 고려인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가족과 친족 및 지인들이 연쇄 이주하면서 7000여 명이 군집했다. 광주 안에 존재하는 가장 국제적인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조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그 뿌리가 우리 동포인 셈이다. 이매리 작가는 전쟁과 이주가 엮어낸 고려인의 역사적 서사에 주목한다.

전시는 3개 섹션으로 나뉜다. 첫 번째 섹션은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이다. 이 작품은 고려인 마을에 송출되고 있는 ‘GBS고려방송(FM93Mlhz)’을 활용한 복합 매체 설치 작품으로, 회화작품과 함께 사운드, 라디오편성표 등이 한 공간에 자리한다.

두 번째 섹션은 ‘이민자의 물건들’이다. 이 작품을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실제 이주민과 협력해 그들의 사물들을 수집했다. 고향의 기억이 각인된 ‘사물’은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복, 시계, 수첩 등 한국에서 사용 가치는 사라졌지만, 한 인간의 기억에 존재하는 소중한 사물을 소환한다.

세 번째 섹션은 ‘시대사적 사건들의 드로잉 Map’이다. 이 작품은 전시장의 가장 큰 벽면을 차지하는 대작이다. 시커먼 블랙의 거대한 캔버스 위에 이들의 이주역사를 시각화했다. 전쟁과 이주의 과정 등으로 얼룩진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개개인의 역사적 사실을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매리 작가.
이매리 작가는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 터전이 어떤 ‘약속의 땅’이 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며 “한편으로 고려인을 우리 주류사회로 진입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 경계했다. 그들도 삶의 욕망을 가진 우리와 똑같은 인류로 바라보며 ‘인류사’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시각예술로 보여주고자 한다. 나의 작품들이 ‘그들’을 ‘우리’로 엮어 내는 큰 울림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문희영 예술공간 집 대표는 “광주비엔날레 개막으로 광주 곳곳이 미술축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획한 전시다”며 “광주 역사의 한 단면이랄 수 있는 주제를 통해 예술이 품어 낸 포용과 공감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다. 국내외 많은 미술 관계자와 애호가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6일까지 진행된다. 오프닝 행사는 오는 5일 오후 5시 예정돼 있으며 추후 이매리 작가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대담’도 진행될 예정이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