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미술계 ‘좋은 작가’, 그 자체로 경쟁력 갖는 발판 필요”
새로쓰는 예향 지리지<2>광주화단 떠오르는 얼굴들
유지원 “작업 지속할 원동력 필요”
고차분 “지역성 덜어내는 노력을”
2024년 08월 01일(목) 18:20
유지원 작가
최근 광주화단의 새로운 얼굴들이 눈길을 끈다. 어느 시대든 새로운 세대가 채워지기 마련이지만, 광주화단의 어느 시점과 세대를 지나 장르의 다양성을 펼쳐 나간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광주의 예술 관련 주요무대에서 특별한 설치미술을 보여준 유지원 작가와, 지역을 넘어 전국 미술애호가들의 ‘픽’을 받는 고차분 작가를 만나 ‘광주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지원, 설치작업 새 이정표

소멸된 건축적 이미지를 차용해 설치작업을 선보여 화단의 주목을 받은 유지원 작가는 전업작가로서 지난해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다. 지난해 3월 전국에서 주목할만한 청년작가 기대주 4인을 꼽는 제23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을 시작으로 4월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본전시 참여까지. 광주에서 큰 무대 2개에 잇따라 설 기회가 주어진 것. 이후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모전시, 인도네시아 교류전시, 최근 조선대 올해의작가 선정 등 미술계에 ‘유지원’ 세 글자를 각인시키며 괄목할만한 이력을 쌓았다.

유 작가는 예술인생 새 챕터를 준비 중이다. 오는 9월 조선대 미술대학 현대조형미디어전공 전임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쓴다. 광주에서 설치작업을 주로 이어가며 매체 다양성을 넓히는 데 한몫한 그 나름의 고충은 없을까? 그는 “작업 스케일이 크니깐, 비용적 측면 등 현실적 문제도 있지만, 요즘은 장르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있어 구분하지 않는다”며 “광주도 이 지역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하고 트렌디한 예술작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자로서 후배들을 위한 길을 닦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23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위상의 변주’에 소개된 유지원 작 ‘Modern House’.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유 작가는 조선대 미술대학 졸업 후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과 프랑스에서 긴 유학생활을 보냈다. 먼 타국에서 작품세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다시 돌아온 곳은 ‘광주’였다. 그는 “마주한 광주는 곳곳이 재개발로 허물어지고 다시 조성되는 과정에 있었다. 버려지고 부서지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며 “자연스럽게 광주의 단면에서 작업이 시작됐고 시립미술관, 문화재단 등에서 레지던스 참여작가로 선정되면서 광주에 머물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에는 국공립·사립 미술관을 시작으로 비엔날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재단 등 무대를 펼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이런 공간은 해외와 비교해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문제는 그 이후다.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청년을 넘어 중견의 시기까지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차분, 주요 미술시장서 ‘각광’

고차분 작가.
고차분 작가는 9월 4일 개막하는 전국 최대 미술시장인 ‘2024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 출품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 작가가 광주에서 작업하면서도 전국구로 활동범위를 넓혀나간 것은 최근 2~3년 사이다. 고 작가는 지난 2020년 전남문화재단이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공동기획한 프로젝트 ‘제로베이스 in 전남’에서 완판을 기록하며 인기작가로 떠올랐다.

이후 서울옥션의 다른 경매행사에도 초대되는 등, 서울과 부산 등 주요 미술시장에서 러브콜이 이어지면서 광주 상업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차분’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긴 여정이었다. 지역에서 대학을 나와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공방운영, 직장생활을 겸업했고 돌봐야 하는 가족들까지, 고단한 삶의 틈을 비집고 주어진 전시기회는 마치 사투와 같았다. 어쩌면 영원히 평화로운 곳, 집에 대한 천착에 이르렀던 것은 자연스러웠던 과정일지 모른다.

고 작가의 작업은 지난하다. 캔버스에 수많은 집을 빼곡히 채워 넣고 끊임없이 색을 얹히는 과정이 반복돼 고단한 삶의 과정처럼 ‘수행’의 시간이 이어진다. 금방 완성되지 않는 작품의 숭고한 가치를 맨 처음 알아본 첫 콜렉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는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신진 시절부터 광주에서 내 작품을 알아봐 주신 원로 선생님이 계셨다”며 “내 작품을 좋아해 주는 애호가들이 나타나길, 일상에서 작업을 중단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하랑갤러리가 개최한 2인전 ‘숨결의 공간’에 소개된 고차분 작 ‘무리들’. 하랑갤러리 제공
광주는 미술시장을 이끄는 갤러리나 화랑 환경이 전무하다 보니 서울 갤러리들 초대로 전국·세계 아트페어에 참여하고 있지만, 여전히 광주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나의 첫 콜렉터처럼 신진작가 누군가에게 빛이 될 수 있는 선례가 되고 싶다”며 “광주는 활동 초반 작품세계를 소개할 수 있는 무대나 기회는 많지만, 그 이후의 판로가 다양하지 않다. 나 역시 전남문화재단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지역성을 덜어내고 ‘좋은 작가’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목받는’ 광주 청년작가 20인.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