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박재항>읽기 강박과 우리가 잃은 지루함
박재항 이화여대 겸임교수
2024년 07월 30일(화) 17:26
지난 5월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24 서울 세계도시문화축제 ‘인터내셔널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멍을 때리고 있다. 뉴시스
외출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리며 집에 무언가를 두고 온 걸 깨닫고 ‘아차’ 하는 순간이 늘어간다. 나이 들며 잊음이 심해져서 이기도 하지만, 챙기는 것들이 많아진 까닭도 있다. 지갑이나 스마트폰은 워낙 필수품이라 두고 왔으면 바로 돌아가서 가지고 오지만, 망설이게 되는 물품들도 있다. 대표가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수단 안에서 읽을 책이다. 가방 안에 읽을 거리가 없으면 안절부절 한다.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의 하나임을 자랑스레 생각하며서도, ‘읽기 강박’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스포츠센터의 트레드밀에서 걷기를 하면서도 책을 읽었다. 10년 전까지는 욕탕 안에서 반신욕을 하면서도 책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돋보기를 끼면서 사우나 안에서의 독서는 그만두었다.

읽기 강박증은 예전부터 있었다. 화장실에서 낙서라도 글자로 쓰여져 있는 것은 꼭 읽어야 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의 창립자인 드윗 윌리스는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해 병실에 누워서 잡지 읽는 걸로 소일하면서 요약판 잡지라는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원래 길거리의 표지판이나 호텔방의 작은 안내문까지 글자라면 지나치지 않고 읽어야만 하는 강박 증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증세를 가지고 있고, 오타를 발견하면 으쓱대기도 했지만 시대에 뒤떨어지고,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하기도 했다. 회사 생활하며 보고서를 많이 쓰고, 검토하고 수정하는 게 업이 되면서는 직업병 비슷하게 슬쩍 넘기기도 했다.

IMF 경제 위기 시절에 한 친구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거부하는 이들을 무더기로 대기발령을 냈다. 친구에게 들으니 대기발령을 받은 사람들 다수는 큰 테이블이 있는 방으로 출근하여 책이나 신문만 읽으며 퇴근시간까지 보낸다고 했다. 그 얘기를 나와 비슷한 ‘읽기 강박’이 있는, 소설 작품도 발표했던 미국 친구가 듣고는 ‘꿈의 직업(Dream job)’이라고 농담 겸 진담으로 얘기했던 적도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서는 읽기에 듣기와 보기까지 더해졌다. 챙기는 물품 중에 이어폰이 들어갔다.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고, 편도 한 시간 넘게 강의를 다니게 되면서는 오디오북도 다운을 받아서 들었다. 태블릿 하나를 선물 받고는 한동안 그만두었던 트레드밀 위에서 책읽기도 다시 시작했다. 책장 넘기고 고정시키기가 힘들었던 트레드밀에서의 책읽기가, 부피도 웬만한 책보다 작고, 손가락 끝으로 살짝 화면만 만져도 다음 쪽으로 넘어가니 편리해져서이다. 그러면서 트레드밀에서의 TV는 꼭 켜놓고 힐끔힐끔 본다. 어떤 때 미처 팟캐스트를 듣고 있던 이어폰을 빼지 않고 태블릿의 다운 받은 전자책을 읽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앞쪽의 TV까지 세 개 매체가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 북리뷰 부문의 책임자를 2022년까지 맡았던 파멜라 폴은 인터넷 때문에 우리가 잃은 100가지 중 첫 번째로 ‘지루함’을 꼽았다. 라디오만 지직대는 교통 체증에 갇힌 차 속, 거의 움직이지 않는 마트 계산대의 줄 한가운데, 과월호 잡지만 있는 병원 대기실 등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회상해 보라고 한다. 파멜라 폴이 70년대의 부모들이 뒷좌석에서 아이들이 지루해 할 때 무엇을 했던가 물었다.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아이들이 매연을 마시게 놔두었다는 게 답이다.

유모차에는 손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기기들을 잡고 볼 힘도 없는 아이들을 위한 거치대가 마련되어 있다. 유모차를 미는 이들을 위한 거치대도 뒤에 따로 마련이 되어 있다. 한때 게시판에 자주 오르던 식당 안에서 마구 뛰어 다니는 애들에 대한 불만이 줄어든 요인으로 스마트폰을 보느라 애들이 정신이 팔려서 그렇다고도 한다.

단순히 시청각적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강박 이상으로 일하는 데도 그런 여백을 꼼꼼하게 메우려는 움직임도 있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을 대표하는 놀이공원에서 이벤트를 담당하는 선배 한 분이 계셨다. 그 분의 초청으로 5~6년 만에 그 놀이공원을 갔는데, 이벤트가 더욱 화려해지고, 출연자도 많고, 내용도 다양해졌는데,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나중에 선배에게 그 느낌을 전하자, 그런 얘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원인을, 공연이나 행사에서 진행 순서와 참여자들의 움직임을 지시하는 큐시트를 들어서 얘기해줬다.

“예전에는 우리가 큐시트를 5초 단위로 작성했거든. 그것도 아주 치밀하다고 그랬어. 이제는 그 시간이 점점 짧아져서 3초에서 1초 단위로까지 왔어. 출연자들도 1초 단위로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야 하고, 더 심각한 문제는 관객들이 공연 한 순간 한 순간을 음미하며 즐길 시간이 없는 거야. 계속 그 움직임 따라가기 만도 바쁘니 불편하지.”

세스 고딘이라는 마케팅 전문가가 얘기한 바에 따르면 미국 교통안전청에서는 ‘공항에서 보안검사를 할 때 허리띠와 노트북은 같은 바구니에 넣어서는 안 된다’라는 규칙이 있단다. 그걸 그는 실제 안전한 것보다는 ‘규칙을 따르는 체제를 만들고, 무작위적 불안을 조성’하여 ‘그렇게 하면 더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같다며 ‘그런 거라면 계속하세요’라고 비꼬았다.

규칙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으면 뭔가 일을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공항 검색대에서 노트북을 따로 꺼내 놓으라는 건, 보안 직원들에게 가만히 있지 않고 뭐라고 한 마디 하도록 계속 일을 시키려는 장치가 아닐까. ‘배터리 폭발’ 이런 건 실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주 좋은 핑계거리이고. 입국심사대 같은 데서 사람들 줄을 이리저리 몰아치거나 새 줄을 만드는 행위도 실제 속도 개선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는데, 뭔가 움직임을 만들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고, 직원들에게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정보 입력을 안하고 멍하니 있으면 지루함을 넘어 불안해 하는데, 이렇게 입력만 계속 되면 출력을 할 시간까지 잊게 된다. 입력을 끄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이 정보과잉의 시대에 그래서 사서 지루함을 찾는, 아니 지루함으로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드는 ‘멍때리기 대회’와 같은 행사가 생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