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만물트럭
김성수 논설위원
2024년 07월 30일(화) 16:50
당일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출근 전까지 신선식품을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 온지 오래다. 대형 유통업계가 ‘로켓·새벽·당일배송’ 등을 통해 속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생필품과 신선식품을 언제든지 받아볼 수 있다. 저렴한 가격에 각종 할인까지 받는다. 소비자 입장에선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대형 유통업계의 편리한 퀵(quick) 서비스는 대도시에서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인구감소가 심각한 농어촌은 사정이 다르다. 주거지 주변의 상권이 없어 일정 거리 이상을 이동해야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일명 ‘식료품 사막(food desert)’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식료품 사막은 고령화 비율이 높은 일본,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이미 사회 문제화됐다. 주민들이 신선 식품을 먹지 못하고 가공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늘면서 비만 등 성인병과 영양 불균형 문제가 불거졌다. 또 주민들 외출이 줄면서 사회적 고립을 겪는 경우도 생겼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장보기 약자’ ‘쇼핑 난민’으로 정의한다 .일본의 장보기 약자는 8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미국도 마트 등과 일정거리 이상 지역을 ‘식료품 사막’으로 정의하고 있다. 식료품 사막 거주민만 2350만명(2020년 기준)에 달한다고 한다. 이미 고령화가 진행된 선진국에서는 관련 정의를 만들어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도 빠르게 식료품 사막화가 진행중이다. 통계청의 농림어업총조사 결과 2020년 기준 전국 행정 리 3만7563곳 중 소매점이 한 곳도 없는 곳이 2만7609곳으로 73.5%에 달했다. 이중 2224개(5.9%) 마을에는 대중교통도 없다.

식료품 사막화를 막기 위해 ‘만물트럭’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어촌 주민이 생활필수품을 보다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를 시범운영한다.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는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 등을 싣고 농촌 마을을 돌며 판매하는 일명 ‘만물트럭’을 의미한다.

일부 시행중인 만물트럭이 닿는 마을 곳곳에선 ‘오픈런’(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는 행위)이 이어질 정도로 인기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먼 거리를 오가며 장을 보는 수고를 덜어주는 만물트럭은 고립된 마을에 ‘귀한 손님’일 것이다.

‘식료품 사막’은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 과밀화를 만든 인간의 과오나 다름없다. 전화 한통, 클릭 한번이면 식료품을 당일배송해주는 21세기에 식료품을 살수 없어 생존에 위협을 받는 국민이 존재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식료품 가게조차 없어 고통 받는 농촌 주민들에겐 만물트럭은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정부 차원에서 만물트럭을 늘려 ‘식료품 사막’을 막아야 할 것이다. 소외된 시골마을없이 전국 방방곡곡 누비는 ‘만물트럭’의 활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