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庭園·임효경>청출어람
임효경 완도중 교장
2024년 07월 23일(화) 17:50
임효경 완도중 교장
자연은 참 경이롭습니다. 어김없이 백일홍이 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천지를 자미원(紫微苑)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 반질반질하고 단단한 줄기 껍데기에서 피는 붉은 자줏빛 꽃의 정체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너 어디서 나왔니? 그 주변을 잠자리 떼가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속의 장면이 그리워집니다. 잠자리채 들고 뛰어가는, 여름 방학이 그저 즐거운 소년 소녀의 모습.

또 매미가 애처롭게 수풀 속에서 찌르르 찌찌르르~~!!! 울어댑니다. 그래, 너도 참 애썼다. 애벌레로 그 오랜 시간을 버텨내고, 성충으로 숱한 시련에서 비껴 나왔을 터. 오롯이 너 혼자만의 껍질 벗기까지 완성하고 드디어 날개를 달고 그렇게 우렁차게 울어대니, 내가 그 시끄러움을 음악이라고 칭송하겠다. 온몸으로 만들어 내는 음악. 나는 한 번이라도 그렇게 큰 소리로 온몸으로 존재를 걸고 외쳐 보았을까? 너 참 대단하다.

때가 되면 질서 정연하게 자기의 색깔, 모양, 자기만의 소리로 온 천지를 뒤덮고 마는 자연의 세계 속에 또 우리 학생들도 있습니다. 지난 주, 우리 완도중은 기말고사를 마치고, 학생자치회가 주관하여 3Go!를 외쳤습니다. 동양화 그림 맞추기 게임을 했을 리가 없지요. 우리 학교 특색 사업 중 하나인 토론하Go! 뛰Go!, 노래하Go! 프로그램입니다.

첫 번째 ‘토론하Go’ 시간에, 각 학년마다 정해진 영화를 보고, 주어진 논제에 따라 찬반 토론을 각 반에서 펼쳐 보입니다. 2학년 학생들에게는 영화 ‘옥자’를 보여 주고, ‘우리가 키운 가축에게 생존의 권리를 주어야 할까?’라는 논제가 주어졌지요. 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편으로 나뉘어 입론, 반론을 하는 동안 학생들은 경청한 후, 각자 자기의 주장을 메모지에 써서 벽보에 붙입니다. 이후 학생들의 스티커 투표를 통해 가장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갖춘 학생의 주장을 선발하여 표창하는 것입니다.

평소 늘 엎드려만 있던 그 아이도 눈을 반짝이며, 반대편의 반론에서 침을 튀겨가며 논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그래, 너도 너만의 의견이 있었구나.

두 번째 ‘뛰Go’ 시간에는 체육관으로 모여, 학년별 왕피구를 펼쳤습니다. 한 명의 아이를 왕으로 비밀스럽게 지정한 후, 학급이 단합하여 그 아이를 보호하며 경기를 펼치다가, 상대방 왕을 공으로 맞추면 게임이 끝나는 경기였습니다. 일방적으로 앞서던 팀의 왕이 죽으면 어이없게 역전되는,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학급 단합을 보여주기 보다는, 반 단합대회를 열 수 있을 만큼의 큰 금액의 완도사랑상품권에 눈이 멀어 치열하게 던지고, 받고, 온 몸을 던지고, 아주 난리가 났었습니다.

한 근육질의 아이가 욕심껏 내던진 공이 바닥에 철퍼덕! 머리를 박고, 큰 몸집의 역도 선수 한 아이는 제일 먼저 타격대상이 되어, 금방 아웃됩니다. 어이없다는 듯 방어선으로 물러나는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점심 후, 세 번째 ‘노래하Go’ 는 반별 합창 경연대회 및 개인 장기자랑,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학교 밴드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입니다. 반별 합창? 어떻게 해낼까? 걱정 반 기대 반이 무색하게 30여명의 천방지축 남자아이들이 아름다운 가사를 다 외워서 함께 소리 맞추어 하나의 합창곡을 완성해냈답니다. 10개의 반이 다 다른 모습으로, 다 어여쁜 모습으로 무대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이후 개인 무대에서는 래퍼가 등장하여 입으로 현란한 리듬감을 자랑하고, 한 춤꾼은 무대 먼지를 다 쓸어 담으며 현란한 발재간을 보여 주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호응과 박수갈채를 받은 것은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완중 밴드’였습니다. 키보드 한 대, 기타 2대, 베이스 1대, 클래식 기타 1대, 드럼 등 소박한 악기 구성이지만 8명의 아이들이 멋진 모습으로 완성도가 높은 곡들을 선보였습니다. ‘너에게 난’, ‘비와 당신’, ‘붉은 노을’ 등 어느 프로그램 가왕 선발전에서 볼 수 있는, 결코 쉽지 않은 선곡이었어요. 특히, 주찬이는 클래식 기타를 가지고, 간주에서 솔로로 아르페지오를 했는데, 아주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그 아이는 작년 12월 학교 축제에서 형들이 하는 밴드 무대를 보고, 기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6개월 만의 스타 탄생이었습니다. 조용하고 어느 질문에나 수줍은 미소로 답하곤 하던 아이가 저런 감성과 저런 열정을 가지고 탄탄한 연주 실력을 뽐내다니, 참 기가 막혔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에는 예기치 않은 볼링 체험에서 200점이라는 엄청난 솜씨를 뽐내는 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스트라이크를 연속으로 했다나요? 사실, 야구 대신 볼링이었거든요.

우리 학교는 매년 완도 장보고장학회에서 후원해 문화예술체육 체험 프로그램으로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00여 명의 학생들이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되었습니다. 현재 선두를 달리는 KIA타이거즈의 높은 인기 때문에 관람을 신청한 학생들이 유난히 많았답니다. 기대에 부풀어 완도를 출발하여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로 가는 도중,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어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우천 시 볼링장으로 가는 사전 준비가 되어 있어서 신속한 대처를 했지만, 하늘이 도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 볼링장에서 우리 110명이 25레인을 다 차지하고, 우리 완도중 학생들과 교사들이 함께 볼링을 체험하였는데, 야구 경기 관람보다 더 신나게 재미있게 추억 쌓기를 하고 왔답니다. 새로운 체험과 뜻밖의 기회에 발현되는 아이들의 장기(長技)를 또 보았습니다.

이렇듯 우리 학생들이 각자 자기만의 또 다른 모습, 끼와 색깔을 드러내는 장(場)에는 분명하게 누군가 뒤에서 봐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지켜보고, 안전하게 성장하도록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격려하고 칭찬하며, 가르침에 채찍질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그 자연의 세계에는 반드시 앞서 나가주는, 모범의 대상이 있어야 하거든요.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날, 유난히 빛나는 그대들, 참 고마운 우리 선생님들.

청출어람(靑出於藍). 학생들이 비취색으로 더 영롱하게 빛날 때, 그 근원의 녹색을 기꺼이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준 선생님들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을 꼭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