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특집>지방 소멸 위기 속 도전으로 활력 불어넣는 청년들
●완도 용암리 이장 김유솔씨
6년간의 서울 생활 접고 완도로
24살에 전국 최연소 여성 이장
●청년 마을활동가 장현규씨
10년째 용봉동서 '마을발전소' 운영
학교-주민-상권 연계 프로그램 추진
2024년 07월 18일(목) 17:53
완도군에서 사진관을 운영 중인 김유솔씨는 마을 어르신들의 장수 사진을 찍어주며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지방 소멸 위기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환경 속에서도 지방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리더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마을 청년활동가로서 주민 공동체를 만들고, 마을 의제를 정책화하는 ‘생활정치’를 실현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최연소 이장으로서 어르신들과 함께 동네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며 마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들의 노력은 단순히 한 마을의 변화를 넘어 지방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본보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지방소멸 극복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완도 용암리 이장 김유솔씨

“이제는 완도를 미워했던 만큼 좋아하게 돼서 완도를 멋쟁이들의 섬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있습니다. 그렇게 제주도 부럽지않은 완도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26살 김유솔씨는 완도군 완도읍 용암마을의 이장이다. 2022년 이장을 처음 맡게 된 당시 24살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이장에 올랐던 그는 벌써 2번을 연임해 어엿한 3년차 이장이 됐다.

완도에서 태어난 유솔씨는 고등학교 3학년 당시 서울로 올라가 일을 시작했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친 그는 오랜만에 휴식을 위해 찾게된 완도에 반해 2019년, 6년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왔다.

완도군 완도읍 용암마을 김유솔 이장.
김씨는 “어릴 적 완도가 너무 답답한 시골이라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서울로 도망갔었는데 그렇게 힘겹게 올라갔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할 수록 그저 평범한 직장인처럼 느껴져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주변 사람들이 완도로 놀러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완도로 여행을 가볼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여행으로 찾은 완도가 어느 곳 못지 않게 예쁜 바다를 가진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완도는 이렇게 예쁜 곳이였는데 답답하다는 이유로 몰라주었구나 생각하게 됐고, 조금 살아볼까 하는 찰나에 친구들이 보정잘하는 사진관 언니가 필요하다는 말에 홀려서 사진관을 창업하게 됐다. 그렇게 돌아온 지 벌써 6년차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이장은 어렸을 때 함께 완도에서 지냈던 청년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을 보고 청년들을 불러 모으는 등 주도적 활동을 위해 청년공동체 사업을 시작했다.

이장선거를 앞두고 있던 2022년 1월, 전 이장이 이장을 해볼 생각 없느냐는 제안을 해 왔다. 김유솔씨와 함께 후보에 이름을 올린 어르신은 “젊은 사람이 하겠다는데 우리가 모두 도와야지”라며 기권하고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유솔씨가 이장을 맡고 있는 완도읍 용암마을은 평균연령이 68세, 80세대 50여명이 살고 있는 한적한 마을이다. 이제 3년차 이장인 김씨는 마을주민과 지자체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들을 위해 만드는 정책들을 필요한 주민들에게 전달하거나 대신 접수를 하는 일들을 도맡았다. 또 마을에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직접 해당 기관과 협의해 민원을 해결하는 ‘홍반장’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김씨는 노인 복지와 관련된 일은 물론 노후건물 수리, 폭우와 폭설 시 마을 배수문제 마을길 관리 등을 주로 해결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사업을 운영하면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한글학교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용암마을의 든든한 ‘홍반장’인 김씨에게도 어려운 순간은 있었다.

김유솔씨는 “아무래도 제 선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게 고스란히 마을의 피해가 될까 죄송한 마음과 죄책감이 쌓이곤 한다. 경험이 부족해서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요새 마을 주변에 무분별한 발전과 건설이 이루어지곤 하는데 마을에 올 피해를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제가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했었다. 결국 마을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는데 자칫 잘못됐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힘든 순간들도 마을 어르신들의 애정으로 극복해내고 있다.

김씨는 “이런 어리숙한 모습을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주민분들이 있는데 ‘처음엔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며 어디서나 제 칭찬을 해주시곤 한다”며 “한때 죄책감에 빠져 연임을 꿈도 못꾸고 있을 때 ‘나는 유솔이장이 이장이라서 정말 좋았다’며 연임을 하게 도와주셨던 어르신이 있었다.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도 다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정도로 감사하고 뿌듯했다”고 웃음지었다.

김유솔(왼쪽에서 세번째)씨는 지역 청년들과 함께 플리마켓, 플로깅 등 청년공동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래보다 일찍 고향을 떠난 데다가 6년 만에 다시 돌아온 김유솔씨였기에 ‘24살 최연소 이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을 때 주변인들 모두 믿지않는 눈치였다.

김씨는 “친구들은 게임닉네임이냐며 한동안은 믿지않았다. 나중에 지역신문을 통해 보고나서 놀라서 전화 온 친구들도 있었다”며 “부모님께는 사실 말하기가 민망해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아시고 나서는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더 욕먹는 직업이라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래도 지금은 3년차를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지금은 친구들이나 가족들이나 마을얘기를 하는게 자연스러워졌다”고 덧붙였다.

용암마을의 멋쟁이 이장인 그는 이제 완도를 멋쟁이 섬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김씨는 “사진관을 열고, 마을이장을 맡고, 지역에서 친구들과 공동체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완도를 미워했던 만큼 좋아하게 되어서 완도를 멋쟁이들의 섬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있다”며 “친구들과 함께 완도에서 쓰레기도 줍고, 한달살기도 운영하고, 여러 프로그램들을 운영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 이런 일들이 모여서 저희가 재미있게 잘살고, 그런 모습을 보고 같이 놀러 많은 친구들이 다시 내려오고, 그렇게 제주도 부럽지않은 완도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 과정 중에 제 몫을 이상으로 해내는 멋진 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완도 청년공동체에서 운영한 플리마켓.




●청년 마을활동가 장현규씨

“청년들에게 ‘마을 안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용봉동 마을발전소가 그 역할을 하길 바라요.”

장현규(34)씨가 광주 북구 용봉동에서 ‘청년 마을활동가’ 이름표를 단 지도 어느새 10년이다. 장씨는 지난 2014년 이곳에 ‘마을발전소’를 열고, 마을발전소 사무국장이자 활동가로서 다양한 의제들을 주민들과 함께 해결하고 있다.

그가 용봉동에 터를 잡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장씨는 “용봉동에 살고 있지는 않다”며 멋쩍게 웃었다. 다만 대학생 시절 맺은 마을 주민과의 사소한 인연이 그를 용봉동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장씨는 “전남대학교 재학 시절 풍물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매년 용봉동 주민들과 협력해 정월대보름 행사를 진행했다. 처음엔 수많은 학생 중 일원이었지만, 나중엔 행사 총기획을 담당할 만큼 열정을 가지고 임했다”며 “행사를 계기로 만난 주민들과 호흡이 너무 잘 맞았고, 주민들이 먼저 용봉동에서 함께 공동체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광주 북구 용봉동 ‘마을발전소’ 사무실에서 청년 마을활동가 장현규씨가 주민들이 기부한 물품을 소개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현재 마을발전소는 용봉동 행정복지센터 맞은편 상가 1층에 사무실을 두고, 마을공동체 실현을 위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 네트워크를 만들고, 회의를 통해 의제를 선정하고,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생활정치’를 운영하는 게 주 업무다.

층간소음, 주차, 쓰레기 투기 등 의제에 제한은 없다. 때로는 통기타나 하모니카 합주를 하거나 학생들과 식물심기를 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 된다.

지난 2022년에는 사업 중 하나인 ‘자원순환포인트제’가 제21회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자원순환포인트제는 주민이 재활용을 하면 마을발전소에서 품목별로 포인트를 통장에 적립시켜 주고, 마트·빵집·카페 등 가맹점에서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장씨는 “보통 이런 사업은 1년 단위로 ‘반짝’ 했다 끝나는데, 용봉동은 ‘주민자치’로 실현한 만큼 주민들끼리 매년 사업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3년째 잘 운영되고 있다”며 “이런 점이 좋은 평을 받았던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광주 북구 용봉동 ‘마을발전소’ 청년 마을활동가 장현규씨. 강주비 기자
물론 처음부터 시스템이 잡혀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을발전소 초기 2~3년 동안은 자율방범대 초소나 동사무소 회의실을 빌려 가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장씨는 “당시 치과를 운영하던 한 주민이 치과 소유 건물 1층을 무료로 내줘 1년 동안 신세를 지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주민 모금, 재능기부 등을 통해 사무실을 차렸다. 마을발전소 자체가 주민자치의 현실화”라고 말했다.

현재도 마을발전소 운영비 대부분은 후원비로 마련하고 있다. 사무실 벽면에 나뭇잎 모양 종이에 새겨진 후원자 이름만 150여명에 달한다.

그의 목표는 마을발전소를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장씨는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자연스레 ‘활동가’가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을 상인, 학생, 청년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마을발전소를 계기로 진정한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라며 “이처럼 주민들을 연결하는 마을 플랫폼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를 위해선 많은 청년들이

을 떠나는 일을 막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방안은 ‘청년에게 관계를 맺어주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장씨는 “청년 정책 대다수가 개인에 한정돼 있으며, 금전적 지원으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건 ‘기회’다”며 “과거에는 대학 내에서도 동아리, 학생회 등 학생 자치 문화가 활발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 청년들이 무언가 해볼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일자리 경험을 제공하는 정책이 있지만, 사기업보다는 청년들을 공적인 영역에 투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로 인해 맺어진 관계와 지역에 대한 애착이 지역 소멸을 막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며 “풍물 동아리를 하는 대학생이었던 내가 용봉동에 머무르는 게 하나의 사례이지 않을까”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광주 북구 용봉동 ‘마을발전소’ 사무실 내부 벽면에 붙은 ‘후원자 나무’를 청년 마을활동가 장현규씨가 소개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김은지 ·강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