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화’ 미명 삼청교육 피해자들, 국가 대상 손배 승소
1980년 비상계엄 포고 13호
불법 연행 등 인권 침해 인정
2024년 07월 07일(일) 16:18
1980년대 신군부 정권 당시 ‘사회 정화’라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삼청교육대에서 인권 침해를 당한 시민들과 그 유족이 국가로부터 손해 배상을 받는다.

광주지법 제14민사부(재판장 나경 부장판사)는 신군부 계엄포고에 따른 삼청교육 피해자 A씨와 B씨의 유족 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가 A씨에게 위자료 9634만4348원을, B씨가 받아야 할 위자료의 상속분에 따라 배우자·아들에게는 각기 5400만원과 36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1980년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따라 설치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계엄포고 13호에 따라 영장 발부 없이 6만여 명을 검거, 이 중 4만여명을 전국 26개 군부대에 설치한 삼청교육대에 수용했다.

삼청교육대에서는 4주간 강도 높은 군사 훈련 등 순화 교육을 받아야 했고, 재분류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전방 군 부대 근로봉사, 보호 감호 등으로 또 다시 고초를 겪었다.

당시 A씨는 광주에서 경찰에 불법 연행돼 1980년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302일간 육군 31사단·2사단에서 삼청교육대 순화 교육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척추 협착·탈출 등 크게 다쳐 보호감호 처분을 받고 출소했다.

B씨 역시 비슷한 기간 중 육군 31사단·2사단, 동해사령부 등지를 돌며 삼청 교육을 받았고 허리를 크게 다쳤다.

B씨는 지난해 6월 숨졌고 B씨의 배우자와 아들이 B씨를 대신해 이번 소송에 나섰다.

재판부는 “위헌·무효인 계엄 포고의 발령으로 국민 기본권 침해는 영장에 의하지 않은 검거, 분류 심사, 순화 교육, 근로 봉사, 보호 감호 등으로 현실화됐다. 국가가 계엄포고에 따라 A씨와 B씨를 불법 체포·구금한 뒤 구타하거나 인권을 유린하면서 실시한 이른바 ‘삼청 교육’은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A·B씨는 불법 구금 상태에서 강제로 순화교육을 받고 근로봉사를 함으로 인해 상당한 육체·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전력으로 인해 이후 사회생활, 경제활동에 상당한 지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불법행위 이후 오랜 기간 배상이 지연돼 변동한 국민소득 수준과 통화 가치에 따라 위자료 원금을 증액 산정이 필요한 점, 유사 피해자들에 대한 위자료액과의 형평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정했다”고 판시했다.

같은 재판부는 또 다른 삼청교육 피해자 C씨 등 8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국가가 C씨 등 8명에게 각기 2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C씨 등 8명은 경찰에 구금돼 1980년 9월부터 10월 사이 제11공수여단 학생 삼청교육대에서 순화 교육을 받은 뒤 퇴소했으나 요추 염좌, 늑골 골절 등 상해를 입었다.

재판부는 “C씨 등이 18세 또는 19세에 국가기관에 의해 한 달여 간 불법 구금됐고 강제 순화교육을 받아 육체·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무원들에 의한 조직·의도적으로 중대 인권침해 행위가 자행된 경우 유사 사건의 재발을 억제·예방할 필요성도 위자료 산정에 중요한 참작 사유로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