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한국 근대 미술의 선구자 ‘이중섭’의 생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
박재삼 옮김 | 가디언 | 1만7000원
2024년 07월 04일(목) 16:52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나는 한없이 사랑해야 할, 현재 무한히 사랑하는 남덕의 사랑스러운 모든 것을 하늘이 점지해주셨소.”

아내를 향한 이중섭 화가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글이다.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책에는 유화, 수채화, 스케치, 구아슈화, 은종이 그림 등 이중섭의 대표작품 90여 점과 더불어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이중섭이 일본에 있던 아내 이남덕(마사코) 여사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이남덕 여사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 이중섭이 결혼 전 마사코에게 띄운 그림엽서 등이 담겨있다.

제3자가 아닌 화가 이중섭이 직접 기술한 것을 고 박재삼 시인이 아름다운 우리말로 다시 노래한 이 서간집에는 당시 이중섭의 궁핍했던 생활상과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그리움, 예술에 대한 광적인 집착 등이 애처롭게 표현되어 있다.

무의미 시론으로 유명한 고 김춘수 시인의 이중섭 연작시 중 두 편, 고 이경성 미술평론가의 ‘이중섭 예술론’, 고 구상 시인이 전하는 이중섭의 삶과 예술에 대한 글을 추가했다. 삶과 사랑, 예술을 위해 치열하게 사투를 벌인 이중섭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친구들의 이러한 생생한 증언과 평가야말로 진정한 이중섭을 만나볼 수 있게 한다.

식민지 시절에 만난 일본 여성과 결혼을 하고, 한국 전쟁 기간에 부산, 제주도를 오가며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가난한 생활을 하다 결국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중섭 가족의 드라마틱한 삶과 사랑의 절절함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보아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그 와중에 혼신의 힘을 쏟아 한 점 한 점 완성한 그림들의 붓 터치와 색감 하나하나는 예술에 있어 ‘정직한 화공’이기를 자처한 이중섭의 노력과 고민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의 분신들이다. 그의 삶과 예술을 느끼고 이해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소중하고 진실된 자료는 없을 것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 이중섭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시기 일본, 부산·제주·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거친 붓질, 생생한 색채, 단순하고 힘 있는 형태로 황소나 어린이, 고향의 풍경을 독특한 감수성을 담아 표현하였다. 헤어진 가족에 대한 처절한 그리움, 병마와 가난의 고통 속에서 완성한 후기작 <길 떠나는 가족>, <흰 소> 등은 한국 근대미술의 걸작으로 남아 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