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희귀직업' 필경사
김성수 논설위원
2024년 07월 02일(화) 17:25
신라시대 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은 문집 ‘계원필경(桂苑筆耕)’을 펴냈다. 최치원은 868년에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고, 관료 생활을 거쳐 28세가 되던 884년에 신라로 돌아와 집필한 여러 시문 작품을 엮어 886년 1월에 헌강왕(憲康王)에게 헌상했다. 최치원은 이 문집을 왕에게 바치고, 관직에 중용되기를 구했다. ‘계원필경’의 필경(筆耕)은 융막에 거주하며 문필로 먹고 살았다는 데서 붙인 이름이다. 당대 최고의 사상가인 최치원도 손 글씨로 관직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속 활판 인쇄술이 발전하기 전인 15세기 중엽 이전은 필경사(筆耕士)의 전성시대였다. 필경사는 ‘붓으로 밭을 가는 사람’이란 뜻으로 문자의 발명 이후 생겨난 인류 최초의 사무직으로 통한다.

조선 시대에는 필경사에 해당하는 사자관(寫字官)이 공문서를 작성했다. 명필 한석봉이 오랫동안 맡았던 관직이다. 사자관은 승문원의 사자관청에 소속돼 외교 문서와 왕실 기록물 작성을 담당했다. 조선 초에는 공문서 작성 직책이 없었고 문신 중에서 글씨를 잘 쓰는 자가 맡았으나 선조 때부터 사대부와 서인을 막론하고 사자관으로 삼았다고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전한다.

인쇄기술 발달과 워드프로세서와 프린터가 보급되면서 현대사회에서 필경사는 흔히 볼 수 없는 직종이다. 최근 정부가 필경사를 임명했다. 이번 합격자는 1962년 첫 임명이후 ‘5대 필경사’로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 공무원 가운데 가장 희귀한 직군으로 꼽힌다. 앞서 인사혁신처는 3대 필경사였던 김이중 사무관이 지난해 초 퇴직하면서 같은 해 2월 모집 공고를 냈으나 적격자를 찾지 못해 선발을 보류한 바 있다. 구인난(求人難)을 겪던 필경사가 거의 1년 5개월 만에 임명된 셈이다. 필경사는 인사혁신처 심사임용과 소속이다. 대통령 명의의 임명장 작성, 대통령 직인·국새 날인, 임명장 작성 기록 대장 운영·관리 등이 주요 업무, 채용 자격으로 서예 관련 석·박사 학위 또는 임용 예정 직무 분야에서 근무·연구한 경력을 요구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필경사의 손 글씨는 큰 인기라고 한다. 공직 생활의 자랑으로 삼을 만한 임명장을 컴퓨터 프로그램과 인쇄기로 때울 수 없다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디지털 시대에 붓을 들어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오직 컴퓨터 자판기 ‘타자수’로 실력을 따지는 요즘, 한 획, 한 획 정성스레 써내려가는 손 글씨가 더욱 귀한 세상이다. ‘희귀 직업’ 필경사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