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바라본 시대의 서정적 풍경
이강하미술관 오월특별전 ‘서정적 순간, 그 이후…’
박수만·표인부·임남진 3인 참여
5·18 광주서 어린 시절 공통 경험
1980년 5월 후, 펼쳐진 현대사회
삶의 단면서 개성적 메시지 담아
2024년 07월 02일(화) 17:22
이강하미술관 오월특별전시 ‘서정적 순간, 그 이후…’가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5·18민주화운동 생각하는 광주의 오월전시는 모두 투쟁적이고 아파야 할까? 광주시 남구 이강하미술관이 오는 31일까지 이어가는 오월특별전시 ‘서정적 순간, 그 이후…’는 광주의 오월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날을 상기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중견작가 박수만·표인부·임남진 3인은 5·18 이후에 여전히 펼쳐지고 있는 삶의 슬픔과 사유, 뒤틀린 단면을 은유한다.

임남진 작가는 한복의 심상에서 착안한 고요한 풍경을 비구상적으로 그려냈다. 한지에 채색해 특유의 동양적인 분위기를 유지했지만, 합판을 덧대 삶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는 오랜 시간 민중미술 단체에서 활동했고 탈퇴하면서, 기존 민중미술적 성향의 강렬한 작업방향에 변화를 줬다. 시대적 문제들을 일상과 주변 인물을 통해 탱화나 민화와 같은 그림으로 표현했지만, 최근 변하지 않는 근원적 풍경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이강하미술관 오월특별전시 ‘서정적 순간, 그 이후…’가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표인부 작가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바람결에 은유해 떠올린다. 종이가 가지고 있는 유연함과 가변성을 활용해, 느낌만 남아있던 일상의 감정과 기억을 고정시킨다. 화면 위에 수만 장의 염색 한지 조각들을 반복적으로 찢거나 세워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결을 재현한다. 황망할 정도로 깊고 까만 진도 앞바다, 이태원역에 놓인 추모객의 국화 한 송이는 ‘바람의 기억’으로 남겨지고, 이 바람은 다시 비극 이후에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한다.

박수만 작가의 화면에는 비정형적인 인간의 모습이 등장한다. 몸통보다 머리가 크다든지, 팔·다리가 없다든지, 자세가 뒤틀려 있다든지,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에 팔이 있다든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이면을 단적으로 표현한 그림은 유쾌한 해학을 선사한다. 특히 권투장갑이 등장하는 작품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때리는 사람 없이 상처받을 수 있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은유한다.

이들 3인의 작가는 1980년 광주를 함께 마주했고, 비슷한 시기 미술대학을 다니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거센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우리 마음속에 남겨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시 ‘서정적 순간’은 각각의 주체가 겪은 순간적 경험을 시작으로 거기서 비롯된 정서적 반응을 주목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지난해 5월 이강하미술관이 국립현대미술관 지역 협력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추진한 추천작가-전문가 매칭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임남진 작가와 백기영(전 북서울시립미술관 운영부장) 평론가가 만났고 작가의 대표 작품을 살펴보며 인터뷰를 나눴던 것이 전시로 이어졌다. 이후 이강하미술관은 작가와 평론가를 추가 매칭하면서 프로젝트를 확장했다. ‘표인부-유영아(국립아시아문화재단 학예연구사)’, ‘박수만-강선주(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를 추가로 연결했고 오월특별전시를 마련했다.

이강하미술관은 남구 양림동에 있다.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