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친족상도례’
곽지혜 취재1부 기자
2024년 07월 01일(월) 18:30
곽지혜 기자
최근 골프 여제 박세리가 자신의 부친을 고소하고, 기자회견장에서 복잡한 심경을 눈물로 드러냈다. 그녀는 부친 박준철 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소하고 더 이상 부친의 채무를 대신 책임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박세리는 그동안 엄청난 금액의 채무를 변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내용의 입장을 밝히던 기자회견에서 ‘아버지를 막을 수 없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은 끝내 세계가 인정한 강심장 박세리를 울렸다. 그녀도 수백, 수천번 틀렸다고,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마음을 강하게 먹고, 독하게 먹더라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존재다.

앞서 방송인 박수홍도 자신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던 친형과 형수의 부정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박수홍의 출연료 등 회삿돈 등 61억7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들 형제의 아버지가 사실 자신이 횡령한 것이라고 나서며 친형을 감싸는 모습에 적잖은 논란이 됐다.

이렇듯 유명인들은 물론 우리 주변에서 ‘남보다 못한 가족’의 모습이 드러날 때면 항상 도마 위에 올랐던 법이 있다. 바로 ‘친족상도례’다. 형법 328조 1항인 ‘친족상도례’는 지난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된 법 조항으로, 친족 사이의 재산 범죄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의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한 것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범죄까지 자율적으로 해결하라는 취지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왔다. 결국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328조 1항(친족상도례)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다. 피해자들이 재판절차에 참여할 기회 마저 상실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누구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에 속아 이미 지옥을 살아가는 이들을 두 번 울린 ‘친족상도례’ 법이 7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고대 로마법에서 유래했다는 ‘법은 가족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현대에 수천 년 전의 해법이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지금이라도 법 개정에 대한 물꼬가 트인 것은 다행이지만, 개인 권리의 측면에서 보면 친족상도례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현존하는 법 중 수천, 수백년 전 가치에 초점을 맞춘 법들의 개정은 시급한 문제다. 낡은 법이 국민을 지키지 못하고 있을 때 피해자들의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국가와 법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