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읍성’ 이동약자 안전 우려…“예술 향유 배려를”
통행로 복판 우물·석상 보행 막아
시각장애인 등 이동시 위험·불편
점자블록 등 안전보조장치 없어
동구 "불편사항 수렴 최대한 보완"
2024년 06월 11일(화) 18:02
광주 동구 광산동 빛의 읍성 입구에 석상과 얕은 우물이 설치돼 있지만 점자블록이나 안전장치 등이 배치되지 않아 이동약자의 안전이 우려된다. 윤준명 기자
시각장애인 차장권씨와 본보 윤준명 기자가 지난 10일 오후 최근 설치된 광주 동구 광산동 빛의 읍성을 둘러보고 있다. 김우진 인턴기자
“이런 식으로 점자 표시가 없으면 시각장애인들은 백이면 백 다칠 수 밖에 없어요. 이동약자들이 이용하기엔 어려울 것 같네요.”

일제강점기 사라졌던 광주읍성을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빛의 읍성’이 지난 4일 개관한 가운데, 편의·안전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이동약자들의 이용이 제한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빛의 읍성은 야간관광 구축 사업인 ‘빛의 로드 도심 야간관광 활성화 사업’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기획됐으며, 광주 동구가 총 사업비 45억원(국비 20억원·시비 10억원·구비 15억원)을 들여 조성한 체험형 조형물이다.

광주의 원도심인 동구가 보유하고 있는 역사·문화자원인 광주읍성을 미디어아트로 구현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지만, 이동약자들을 위한 안전시설은 마련되지 않아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평등한 문화 예술 향유를 위해 어떤 보완점이 필요한 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10일 시각장애인 차장권(55)씨와 함께 빛의 읍성을 찾았다.

ACC 옆 통행로를 따라 빛의 읍성으로 향하던 시각장애인 차장권씨는 당황한 듯 걸음을 멈췄다. 통행로 한복판에 석상과 얕은 우물이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케인(시각장애인용 흰 지팡이)으로 조심스레 우물을 짚던 차씨는 결국 동행한 복지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이동했다.

차씨는 “길 한복판에 장애물이 있다면 시각장애인들은 모르고 물에 빠지거나 다칠 수밖에 없다”며 “통행로에 위치해 있으니 보행 상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구를 겨우 지나 조형물 앞에 도착한 차씨는 갑자기 등장한 계단에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조형물을 오르는 계단에 점자블록, 점자스티커도, 심지어 경사로도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점자블록과 점자스티커 유무에 따라 시각장애인들이 느끼는 안전함이 달라진다고 차씨는 설명했다.

광주 동구 광산동 빛의 읍성 계단과 경사로에 점자블록과 점자스티커 등 안전장치가 배치되지 않아 이동약자의 안전이 우려된다. 윤준명 기자
반대편에는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지만 이곳 역시 점자블록과 점자스티커 등의 안전장치는 없었다. 차씨는 계단에 점자스티커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손을 뻗다가 발을 헛디디기도 했다. 어렵게 빛의 읍성 조형물 위에 올라갔다고 해도 다시 내려오기에는 많은 위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사로는 한쪽에만 설치돼 휠체어 이용자들은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동행을 마친 차씨는 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씨는 “빛의 읍성을 걷고 설명을 들으니 시각장애인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없고 이동약자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점자, 청각 보조 장치 등을 설치해 모든 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개선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빛의 읍성 주변으로는 문화전당역과 동명동 식당가 등이 있어 유동량이 많다”며 “이용자는 물론 통행을 하는 보행자의 편의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주 장애인단체는 이동약자들이 평등하게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삼기 시각장애인협회장은 “시설물들을 이용할 때 이동약자들의 시선에서는 반드시 미흡한 부분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단순히 규제에 의해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약자들에게 자문을 구해서 최대한 편의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동구는 오는 8월까지 시범운영 후 불편사항을 수렴해 시설을 최대한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동구 관계자는 “건축물이 아닌 조형물이기 때문에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제도)인증대상은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다만 모두가 불편없이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게 점자·청각시설 설치 등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빛의 읍성 입구에 위치한 우물 등에 이동 불편 민원이 접수돼 조명시설 등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며 “점자블록·스티커 배치, 휠체어 리프트 설치도 적극 고려해 이동약자의 통행과 이용에 불편을 최소화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