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훈련병 사망 ‘후폭풍’…가혹행위 논란 커져
근육 괴사 '횡문근융해증' 사인 추정
무리한 운동·과도한 체온 상승 원인
정해진 ‘군기훈련’ 규정 무시 가능성
경찰, 과실치사·직권남용 혐의 수사
“군의관 미배치 회복 골든타임 놓쳐”
2024년 05월 28일(화) 18:43
미2사단 장병들이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최고전사대회에서 완전군장 후 행군하고 있다. 뉴시스
육군 12사단 을지부대에서 군기훈련을 받다가 사망한 훈련병의 사인이 ‘횡문근융해증’ 의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은 해당 사건을 민간경찰로 이첩, 관련자 2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 요청했다. 군인권센터와 전문가들은 ‘회복 골든타임’을 놓친 이유에 대해 군의관 미배치 등을 제기하며 현장 관리·감독 재점검을 주문했다.

28일 육군 등에 따르면 군기훈련, 이른바 ‘얼차려’를 받다가 쓰러져 이틀 만에 사망한 육군 훈련병 박모씨의 부검 결과 ‘횡문근융해증’ 증상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다만 정확한 사인은 혈액 조직 검사 등 추가 진단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게 육군 입장이다.

횡문근융해증은 근육이 괴사하면서 세포 안에 있는 근육 성분이 혈액으로 방출되면서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무리한 운동, 과도한 체온 상승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박씨의 사인이 횡문근융해증으로 확인될 경우, 간부가 무리하게 군기훈련을 시켜 사망하게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얼차려는 지난 2020년 5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이 마련되면서 군기훈련제도로 변경,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때 ‘신병 구금은 위헌’이라는 비판이 이어져 온 영창 제도도 폐지됐다. 적법한 규정과 절차가 생겨 부대의 기강·군기 확립에 활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규정을 무시하는 지시 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군은 해당 군기훈련에 규정 위반이 있었다고 보고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담은 수사 기록을 이날 강원경찰에 이첩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강원경찰은 군기훈련을 지시한 중대장(대위)·부중대장 등 간부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및 직권남용 가혹행위 혐의로 수사 중이다.

서우석 육군 공보과장은 “육군은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한 가운데 민간경찰과 함께 협조해 조사를 진행했다”며 “조사 과정에서 군기훈련 간 규정·절차에서 문제점이 식별, 경찰의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경찰 이첩을 진행했다. 한 점의 의혹 없이 투명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진상규명되도록 수사에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는 훈련을 진행하는 동안 필요한 훈련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며 현장 관리·감독의 대대적 재점검을 요구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박씨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으로 후송됐다. 다만 ‘나이가 몇이냐’, ‘이름은 뭐냐’는 등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며 “신병교육대 의무실로 이동한 시간이 23일 오후 5시20분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간대는 군의관이 없을 확률이 높다. 통상 수분을 섭취하고 휴식을 취하면 다시 회복되는데, 회복 과정 없이 패혈증으로 넘어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만민 동강대 군사학과 교수는 “이상기온을 고려하더라도 5월에는 대개 일반적인 군기훈련으로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 이번 사고에는 ‘회복 골든타임’을 놓칠만한 허점이 있었던 것 같다”며 “군기훈련 중에는 군의관이 상주해야 한다. 훈련 과정에서 이상 증상이 발견되면 즉시 진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군 당국에 간부·군의관 부족 사태가 있다고 하는데 당시 현장에 적절한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다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전문 인력 배치·매뉴얼 정립 등 안전 대비 태세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도 여러 목소리를 냈다.

과거 국방부 대변인을 지낸 부승찬 국회의원 당선인(민주당·경기 용인 병)은 “사건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쏟아내도 그때뿐”이라며 “시대에 맞는 부대구조 개편과 적정 병력 규모 판단이 다시 이뤄져야 한다. 현역 판정 기준을 강화하는 등 근원적인 고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주·화순 3선 신정훈 국회의원(민주당)은 “(나주가 고향인) 박씨 사고와 관련해 인지하고 있는 상태”라면서도 “당장 정치권 차원에서 추진되는 대책이나 논의는 아쉽게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박씨는 지난 23일 오후 5시 20분께 강원도 인제의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도는 군기훈련을 받던 중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곧장 민간병원으로 응급후송돼 치료받았으나 25일 결국 사망했다. 입소 9일 차였던 박씨는 5명의 훈련병과 함께 완전군장(최대 40㎏ 전투장비)으로 구보를 하거나 팔굽혀펴기를 하는 등 육군 병영생활규정에 위반되는 지시를 따르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오지현·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