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하정호>4·16 이후의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정호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 과장
2024년 05월 26일(일) 17:28
하정호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 과장
봄은 사월과 오월을 지나 어느덧 유월로 접어든다. 볕이 쏟아지고 녹음이 짙어지는 사이 농부들이 갈아놓은 논밭에서 새싹이 오르고 개구리 울음 소리 드높다. 다들 다가올 여름을 분주하게 준비하지만 정치권만은 하루가 다르게 뒷걸음치며 정국을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채상병 특검을 받아라, 못 받겠다. 김건희 여사 특검을 받아라, 갈아엎은 수사팀의 결과부터 지켜보자. 그러는 사이에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여덟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가 인정한 전세 사기 피해만 해도 1만7000건에 이르지만 입법 실책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고, 효과 있는 대책에도 합의하지 못한다. 의대정원 한답시고 병원조차 못 가 발을 구르고, 한편으로는 재수생, 대학생만이 아니라 직장인 의대반까지 생겨 의대 입시에 몰려든다. 너의 고통이 나의 기쁨이 되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 정치는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영역에서 무리지은 자들이 자기 배불리기 위해 공권력을 농단하고 있어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힘조차 없다. 그나마 서로를 물고 뜯는 사이 법조계와 정치인, 기업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추악한 뒷거래와 범죄행각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 보잘것없는 소득일 수 있겠다. 그래도 주류언론, 유튜브 할 것 없이 연일 여야의 정치인들을 도마 위에 올리고 난도질하는 것을 기꺼워하는 것으로 위안 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금남로로, 광화문으로 뛰쳐나가자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을 꺼트리는 것을 보면서 그런 기대는 진작 접었다. 내치와 외치를 모두 망치고도 지금의 대통령이 자리를 부여잡고 있는 것은 8할이 문재인 정부의 탓이다. 다음 대통령이 지금보다야 조금 더 낫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삶이 눈에 띄게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없다. ‘이생망’은 몇몇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고통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도덕적 기준조차 잃어버린 우리들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올해로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되었다. ‘4·16 교육체제’를 말한 지도 곧 10년이 된다는 얘기다. 2016년 4월20일, 세월호 유가족 대표, 단원고 등 학생 대표들과 소위 진보교육감 5명이 손잡고 ‘4·16 교육체제’를 선포했다. 선언문에는 대구·경북·울산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 교육감들이 서명했는데, 당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이 장휘국 전 광주시교육감이었다. 교육감들은 입시와 경쟁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살리고 공동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 공공성과 민주성을 기반으로 한 교육 시스템 구축, 교육으로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 시스템 만들기 등을 새로운 미래 교육체제로 제시했다. “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1년여 고통스러운 성찰의 결과”라고 말했지만, 그 뒤로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각종 안전 규제로 청소년들의 체험활동과 봉사활동이 줄어들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입시마저 수능 비율을 높이는 것으로 후퇴했을 뿐이다. 점입가경으로 조국 사태는 생기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뜨렸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발표한 ‘5·31 체제’를 대체하겠다는 ‘4·16 교육체제’의 260개 세부과제를 하나하나 읽으며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수능 절대평가제 도입과 자격고사로의 전환, 대입 추첨제 전형 도입, 교과서 자율발행제 등이 당시의 주요내용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침몰하는 세월호에 갇힌 것처럼 마냥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신가동 재개발구역 안에 버려진 농협창고 건물을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 놀이터로 바꾸고 그 ‘예술창고’에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몇몇 지인들과 마련했던 청소년 플랫폼 ‘마당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육청이 나서지 않을 때 주민참여예산으로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제안해 시청의 예산 5억원을 확보했다. 신가동이 재개발되면서 예술창고는 없어졌지만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은 60개의 마을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 인천시교육청의 미래교육위원회와 교육연구소 분들이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을 다녀갔다. 전국의 시도교육감들이 함께 지역의 교육거버넌스를 법제화해 단체장이 바뀌어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고 한다. 좋은 제안이다. 하지만 그런 제도가 없어도 아이들과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을 키워가는 것, 풀뿌리를 더 굳건히 내리는 것이 4·16 교육체제를 만드는 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