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정상연>희망의 5·18, 세계 속에 빛나다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문화학박사
2024년 05월 20일(월) 18:49
정상연 교수
“우리들은 자란다.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방정환 선생의 선한 외침으로 제정된 ‘어린이 날(달)’이 있는 5월은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또한 ‘담양대나무축제’, ‘보성다향대축제’, ‘춘천마임축제’, ‘부안마실축제’ 등 다채로운 지역 축제가 많아 갈 곳도 볼 것도 많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로 자연과 하나가 되기 딱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 하고, 검붉은 색과 진한 향기로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장미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사랑의 즐거움’이란 꽃말을 지닌 철쭉도 공원 화단을 장식하고, 나무마다 싱그러운 초록 잎이 무성해져서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눈이 저절로 시원해지고 모든 감각이 즐거워지는 날들이다. 이래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하는구나 싶다.

이렇게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5월이지만, 깊은 숨을 내쉴 때면 가슴 저리고 비통함에 젖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에서 발생한 처절했던 민주화 항쟁이다.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일당이 1980년 5월 17일, 비상사태를 선포함과 동시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을 탱크와 총으로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천인공노할 사건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필자의 어린 두 눈에 새겨진 그때의 모습, 어둠 속 몇몇 장면들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양림동, 기독병원과 전남도청이 가까웠던 지역인지라 총알이 날아가는 날카로운 소리와 헬리콥터 날개가 돌아가는 거친 소리를 매일같이 들었다. 한번은 총소리가 어찌나 가깝던지 깜짝 놀란 어머니가 두꺼운 이불로 방문을 꼼꼼하게 둘러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낮, 덕석에 덮인 채 리어카에 실려 이승을 떠나는 이들도 목도(目睹)했었다. 또 피와 땀으로 얼룩진 교련복에 머리띠를 질끈 묶고 육공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도와주십시오.’, ‘민주시민 여러분, 지금 도청으로 모입시다.’ 목이 터져라 외치던 청년들의 절규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1980년 5월 27일,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시민군 150여 명의 전남도청 최후항전을 끝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됐다. 참으로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5·18 현장을 취재한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 기자가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에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날을 기록했다. 우리 독일인이 제2차 세계 대전 때 저질렀던 만행을 기억하는 것처럼, 5·18도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라고 훗날 인터뷰를 했었다.

그럼에도 5·18을 북한군의 개입이나 불순분자들의 선동에 의한 폭동으로, 또는 해프닝으로 선전, 왜곡하는 목소리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죽음으로 항거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영령들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의 수치이다.

이런 배경 아래 올해로 마흔네 번째를 맞이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의 슬로건은 ‘모두의 오월, 하나 되는 오월’이다. 어느 누구의 5월이 아니고, 또 광주만의 5월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이 기억해야 할 대동의 5월인 것이다. 아픔과 슬픔, 못된 이념의 늪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이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이 하나 되는 자유, 인권, 평화라는 거대담론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일회성의 이벤트나 보여 주기식의 행사가 아닌 새로운 메타포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에 광주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비롯한 오페라 ‘박하사탕’, 뮤지컬 ‘광주’ 등 수많은 문화예술 작품들과 유·무형 자원들이 그때를 기억하고 광주 정신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된지 오래다. 이미 광주의 5·18은 세계의 역사가 되었다. 이제 광주의 5·18 정신은 희망이고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