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정신 확산”…5·18 전국·세계화 이끄는 사람들
스리랑카 인권활동가 수간티니씨
오월어머니 만나 “5·18 큰 힘 돼”
경북 장미옥씨, 전우원 양심선언에
묘지 참배·전야제 합창무대 참석
2024년 05월 16일(목) 18:46
‘전우원’을 통해 광주에 관심갖게 된 경북 영양군민 장미옥씨가 지난 2월 지인과 함께 광주5·18국립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들에 참배하고 있다. 장미옥씨 제공
16일 광주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에서 올해 광주인권상 수상자인 스리랑카 인권활동가 수간티니씨(오른쪽)와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주비 기자
스리랑카에서 수십 년째 인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 여성과 전두환 손자의 폭로를 계기로 5·18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타 지역민들이 광주에 모였다. 각자 다른 계기로 5·18을 접하게 됐지만,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그랬듯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들은 ‘하나’가 됐다. 이렇듯 오월정신은 이제 광주를 넘어 전국,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16일 광주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에서 올해 광주인권상 수상자인 스리랑카 인권활동가 수간티니씨(오른쪽)와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만남을 가진 가운데 김 관장이 수간티니씨에게 ‘오월어머니집 뱃지’를 달아주고 있다. 강주비 기자
16일 광주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에서 올해 광주인권상 수상자인 스리랑카 인권활동가 수간티니씨의 일행과 오월어머니들이 대화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스리랑카의 또 다른 ‘오월’

16일 스리랑카 인권활동가 수간티니 마티야무탄 탕가라사(55)씨가 5·18 제44주년을 맞아 광주를 찾았다. 수간티니씨는 타밀족의 인권신장·권익향상을 위해 앞장선 타밀족의 ‘영웅’이다. 수간티니씨는 정부의 구금과 고문에도 ‘아마라’ 시민단체 대표로 활동하며 타밀족을 억압하는 정부군에 대한 투쟁 활동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수간티니씨의 투쟁은 광주의 오월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가 올해 광주인권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게 된 이유다. 5·18기념재단은 “광주인권상 수상을 계기로 수간티니씨가 시상식과 5·18 전야행사 등에 참여하기 위해 먼 발걸음을 했다”고 말했다.

전야행사 등에 앞서 이날 오전 수간티니씨는 광주 남구 양림동 오월어머니집에서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 국가폭력으로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을 직접 대담한 것이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을 비롯해 이정덕·장명희·박수자·김순자 어머니 등 5명이 자리에 참석해 수간티니씨를 맞이해 점심을 대접했다.

김 관장은 수간티니씨에게 오월어머니집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 관장은 “오월어머니집은 1980년 당시 국가폭력에 의해 자식, 남편, 형제를 잃거나 본인이 다치거나 구속된 여성들이 모여 활동을 하는 곳이다. 지금도 우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수간티니씨 역시 오월 어머니들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피해 당사자로서 ‘오월’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했다. 수간티니씨는 어머니들에게 “국가폭력으로 가족을 잃어버린 아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돼 기쁘다”며 “타밀족에게도 ‘5·18’이 있다. 2009년 5월18일 국가기관에 의해 ‘타밀 대학살’이 일어났다. 그렇기에 광주 5·18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날 오월 어머니들과 청년들은 수간티니씨를 위해 오월어머니집의 노래인 '오월, 기다림'과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선물했다. 또 오월어머니집 배지를 직접 수간티니씨의 가슴에 달아주고, 5·18민중항쟁전적지도 다포를 선물했다.

오월 어머니들과의 만남을 마친 수간티니씨는 “광주 5·18을 알린 오월 어머니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며 “광주에서의 경험이 다시 스리랑카에 돌아가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우원’을 통해 광주에 관심갖게 된 경북 영양군민 장미옥씨가 지난 2월 지인과 함께 광주를 찾아 오월어머니들과 만남을 진행했다. 장미옥씨 제공
●목숨 건 고백이 낳은 오월 전국화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양심선언을 하고 5·18 피해자에게 사죄함으로써 전 국민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경북 영양군 출신의 장미옥(53)씨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첫 마디다. 그는 지난해 3월 전씨의 광주 방문과 사죄 등을 보고 처음으로 ‘오월 광주’를 알게 됐다. 기득권을 포기한 채 자신 일가에 대한 비리를 폭로하고 유가족에게 사죄하는 모습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던 장씨에게 큰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잘못을 뉘우쳐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궁금증이 커졌다. 장씨는 그길로 광주행을 택했다. 낯선 땅에서 마주한 오월의 진실은 그를 먹먹하게 했다. 가정의 달로만 느껴졌던 5월이 낯설고 슬프게만 느껴졌다.

장씨는 “눈앞에서 보게 된 항쟁의 역사는 큰 충격이었다. 축제처럼 꾸며진 ‘5·18전야제’도 구슬픈 추모행사처럼 느껴졌다”며 “망월동·전일빌딩245·기록관 등 안 가본 곳이 없다. 목숨 바쳐 민주주의에 헌신한 이들에 항쟁을 더 깊게 알아보고 싶어졌다”고 회고했다.

이후 장씨는 기념재단을 통해 오월서적 35권을 얻어 전국의 지인들과 나눔했다. 오월 관련 영화를 찾아본 뒤 서로 감상평을 공유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보폭을 넓혀 피해 유가족들이 모인 오월어머니집을 방문, 가족 잃은 서러움을 수차례 함께했다. ‘끌저씨’ 박진우 5·18기념재단 사무처장과도 연을 이어갔다. 오월 정신 계승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장씨는 올해 자녀들과 함께 광주를 방문할 계획이다.

장씨는 “아직도 북한 개입설 등 오월을 왜곡하려는 이들이 많다. 이는 여전히 명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갈수록 그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광주의 오월은 지켜져야 하고 기억돼야 한다. ‘모두의 오월’을 위해서는 결국 젊은 세대의 관심이 중요하다. 함께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장씨와 광주항쟁을 공부한 이들 중 11명은 오월어머니집의 초청을 받아 17일 오후 7시 5·18전야제서 ‘오월, 기다림’ 합창무대에 함께 설 예정이다.

박진우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전우원의 진정한 사과가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고 본다. 전국의 많은 이들이 5·18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며 “가해자를 평화롭게 포용해 주는 모습은 해외서 많은 이슈가 됐다. 진솔한 고백과 유가족들의 포용 모습이 또 다른 사죄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고 평했다.
오월어머니집 민중항쟁전적다포.
정성현·강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