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전일광장·이재남>‘몰래 녹음기 판결’과 교실의 의미
이재남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과장
2024년 01월 16일(화) 13:39
이재남 정책과장
지난 11일 대법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내려졌다. 보호자가 자녀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설치하고 교사 말을 몰래 녹음한 내용이 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판례다. 기존 판결을 뒤집은 것. 1·2심은 학부모 편에 섰다. 서울동부지법은 “30명 학생이 있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공개되지 않은 대화’가 아니다”고 판결했다. 녹음파일을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11일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교사 수업 시간 중 발언은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며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학교는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이며 학생이 아닌 사람이 교실에 들어와 교사 말을 들을 일은 없다는 이유다.

1·2심과 대법원판결 차이는 교실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교실의 활동을 공개된 장소로 볼 것인가 비공개 공간으로 볼 것인가 문제다. 20여명 학생들과 교사들이 생활하는 교실은 공적 과정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국가자격을 가진 교사에 의해 공적인 학교· 학급 운영계획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다. 당연히 공적인 공간이고 공적 통제가 이뤄지는 공간이 맞다. 그런데 왜 대법원은 교실 공간을 비공개 공간으로 내밀한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보호되어야 할 공간’으로 판단했을까.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공개된 발언 여부를 넘어 교육이 갖고 있는 본질적 특성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교육은 한 인간이 성장하는 총체적인 경험을 케어하는 곳으로 외적 과정은 공적이지만 내적으로 한 인간의 내밀한 성장 과정이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성장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생각의 변화를 겪으면서 살아간다. 사회화의 중요한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은 의료기록처럼 보호받아야 한다. 이 보호가 이뤄져야만 교육과정이 정상 운영될 수 있으며 아이와의 진실한 대화가 가능하고 교육적 상호작용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교실은 교육의 본질이 구현되는 신뢰의 과정이다. 이 신뢰는 교사의 교육권이라는 권리와 책임으로 구성된다. 내밀하고 신뢰가 전제되어야 할 교육의 본질적인 영역인 성장의 순간을 몰래 녹음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교육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교사에 주어진 교육권은 헌법 등 외부에서 규정한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한 인간의 성장에 관여하는 소명 의식에서 발생하는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서 발생하는 책임이다.

교사는 그런 측면에서 눈에 보이는 녹음기보다도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 우주의 끝을 향한 저 초롱초롱한 가능성의 덩어리들의 눈빛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면서 오직 그 과정의 진정성을 통해 목적을 실현하는 고단한 직업이 교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