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이기흥 아쎄이…기열!
한규빈 취재2부 기자
2023년 12월 28일(목) 12:50 |
한규빈 기자 |
해병대의 부조리와 사건 사고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 ‘해병문학’에 등장하는 말이다. 선임들이 ‘아쎄이’라고 불리는 신병들에게 분노를 표출할 때 주로 사용되는데 군대서 말하는 기열(기수 열외)에 비해 가벼운 의미다.
최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아쎄이’가 될 것을 자처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됐다. 이 회장은 지난 10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선수단 해단식 기자회견에서 새해에 국가대표 선수들이 진천선수촌에 입촌하기 전 해병대 극기 훈련을 받게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본인도 함께 하겠다는 의사도 함께 밝혔지만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에 앞서 장재근 진천선수촌장이 선수들 정신력 운운하며 오전 0시부터 5시까지 와이파이를 끊고 의무적인 새벽 훈련과 산악 구보를 실시했던 터라 비판 여론은 더 거셌다.
비판 여론이 일면서 해병대 훈련은 농담으로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결국 현실이 됐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원 팀 코리아 캠프’라는 이름으로 500여 명을 포항 해병대 1사단에 입소시켰다.
수영 김우민과 양궁 김우진, 육상 우상혁, 체조 여서정, 펜싱 구본길 등 국가대표 선수단이 차출됐고 대한체육회와 회원 종목 단체 임직원도 동원됐다. 지역에서는 근대5종 전웅태와 양궁 최미선 등이 입소했다.
체육계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한체육회는 이번 해병대 훈련 목적을 ‘파리 올림픽 목표 달성을 위한 정신력 강화와 해병대의 충성, 명예, 도전 정신 학습’으로 설명했는데 국가대표 선수단이 이를 위해 훈련을 포기해야 했다. 최강 한파 속에 선수들이 훈련을 내려놨고 부상자가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해병대 출신 한 체육계 관계자도 이번 훈련을 두고 “현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이다. 저 역시 해병대에서 추구하는 정신을 높게 평가하지만 이를 스포츠 정신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이겨야 하고, 우승해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혹평했다.
올림픽 정신이 뭔지 간부들이 제대로 몰라 생긴 문제다. 근대 올림픽 이상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 증진’에 있다.
올림픽 강령에서는 ‘올림픽 의의는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기흥 회장과 장재근 선수촌장 등 간부들이 성적을 논하기 이전에 올림픽과 스포츠의 정신, 올바른 가치를 정립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