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배움의 庭園·임효경> 청해진에서 보내는 가을 편지- 음악에 대하여
임효경 완도중학교 교장
2023년 11월 08일(수) 16:22 |
임효경 교장 |
그런데 오늘 아침은 너무 색다르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핸드폰에서 나오는 아침 방송 음악을 들었다. Led Zepplin의 Stairway to heaven이라는 곡을 8분간 듣고 간 것이다. 산등성이를 걸어 올라가는 길이 여느 때처럼 힘들지 않았다. 사실 나이 들면서 하루 만 보를 채우고자 걷는 길이었기에 힘들어도 견디는 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 좋다. 아~~ 행복하다’ 하며 걸었다. 오늘은 학교 가는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인가 싶었다.
행복은 계속 찾아왔다. 11월의 청해진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푸른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3층짜리 붉은 벽돌 본관을 부드럽게 두드리고 따스하게 밝혀주는 아침에 2층 교실에서 들려오는 ‘넬라 판타지아’ 오보에 소리가 들린다. 오보에가 관악기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했던가? 학생들은 분명 음악 수행평가 듣기를 하는 중일 것이다. 그땐 모른다. 음악이 주는 힐링을. 오늘 우리 학교는 단풍 물이 들기 시작한 서망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환상의 나라가 된다. ‘아~~ 좋다. 아~~ 아름다운 세상이다’ 감탄이 나온다.
10월 마지막 목요일 완도중학교 넓은 인조 잔디 운동장은 240명의 학생과 40여 명 교직원들이 아침부터 목소리를 높이고 온몸으로 경기에 임하고, 응원하느라 북적북적 활기로 가득 찼다. 교내 스포츠 문화 축전의 날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운동회라고, 중학교 이후로는 체육대회라고 불렀었던 날이다. 명명하는 것이 바뀌니 확실히 내용이나 경기 진행이 젊고 세련되었다. 축구, 농구, 피구, 줄다리기, 달리기 등 여러 종목을 토너먼트로 진행하여 우승한 반 전원에게 햄버거 세트가 부상으로 나간다. 그래서 반 대항 경기에 모두 우승하려고 질풍노도의 시기 중학교 남학생들이 매 경기 승패에 진심이다. 1학년 시우는 일주일 내내 방과 후 학원도 안 가고 저녁 10시까지 완도 공설 운동장에서 공만 차고 온단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 세탁하기 바쁘신 어머니 걱정과 염려와 달리 시우는 시커멓게 탄 얼굴에 축구화 둘러메고 신난 얼굴로 교문에 들어선다. 축구에 아주 진심이구나~~ 눈에 보인다. 승패와 상관없이 오늘 하루 그동안 쌓은 기량을 맘껏 펼치며, 으쓱한 어깨와 튼튼한 다리 근육을 자랑하는 것으로 족하면 좋겠구나 싶다. 나도 씩씩한 그들을 더 응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이 운동장을 감싸 안았다. 운동장 여기저기서 어깨를 들썩들썩이며, 다리를 흔들며 온몸으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20대 30대 젊은 선생님들이 보인다. 마침내 싸이의 ‘챔피언’ 노래가 나오자, 모든 학생과 선생님이 펄쩍펄쩍 뛰며 한 손을 하늘로 날리며 ‘어~!! 어~!! 어~!!’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다. 노래 가사처럼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인 것처럼. 챔피언인 것처럼 소리를 지르니 운동장이 찢어지는 듯했다. 전문 디제이를 초청하여 경기 장면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밋밋한 가을 운동장이 영화 한 장면으로 확 바뀌는 순간이었다. 학생 둘이 관람석으로 올라와 ‘교장 선생님 가시죠~~’하며 손을 내밀자, 그들이 이끄는 대로 나도 같이 운동장으로 내려가 폴짝 폴짝 뛰며 머리를 흔들며 한 손을 허공으로 내 찌르며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춤을 춘다. 가을 하늘의 하얀 구름이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음악이 주는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