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8주년>광주 항일운동 근거지 ‘흥학관’ 복원해야
1921년 건립 청년 등 아지트 활용
광주학생독립운동 계획…야학강습
1969년 철거된 뒤 표지판만 남아
“역사적 가치 되살려 복원 추진을”
2023년 08월 13일(일) 18:27
광주 동구 문화전당로35번길 8에 위치한 흥학관 터에 설치된 표지판. 김혜인 기자
광주지역 항일운동의 산실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흥학관’을 복원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흥학관은 1921년 광주지역 최고 부자로 알려진 최명구가 세운 공공시설로, 800평에 이르는 대지에 단층 목조건물로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흥학관 내부에는 대강당과 여러 개의 온돌방, 사무실, 교실 등이 있어 한글과 산술 공부를 하는 야학 교실로, 대강당에서는 음악 공연, 강연이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칸칸이 나눠진 기숙사로 활용됐다.

당시 흥학관은 광주 사회운동의 중심지였다. 우리 민족의 독립을 이끌고, 전라도에 근대문화를 꽃피게 한 텃밭이 됐다.

흥학관은 청년운동의 양대 축이던 광주청년회와 광주노동공제회를 비롯해 광주여성야학과 광주노동야학이 열렸고, 광주부인회가 조직되는 등 청년운동가들의 아지트로도 활용됐다.

특히 흥학관은 항일정신의 근거지로 자리매김했다. 1929년 11월3일 발발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흥학관에서 계획됐고,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400여 명에게 무기정학 처분이 내려지자 이에 항의하는 전남도민대회가 열린 곳이다. 일본의 우민화 정책으로 배우지 못하는 조선인 남녀를 대상으로 무료 야학 강습을 진행해 계몽운동의 거점으로도 역할했다.

오랜 항일의 역사를 가진 흥학관은 해방 후엔 광주시의회 의사당으로 쓰이던 중 1969년 광주시청이 이전하면서 철거돼 지금은 옛 터를 알리는 표지판만이 남아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흥학관의 존재 자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아쉬움을 사고있다.

1929년 9월10일 흥학관에서 조선청년총동맹 전남도연맹 회원들이 정기회의를 열고 기념촬영을 한 사진. 광주 동구 제공
할아버지가 광주청년회, 광주신간회 등에서 활동했다는 최금천(76)씨는 “어렸을 적 할아버지와 흥학관을 몇 차례 갔던 기억이 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업적을 정리하면서 자료를 모으기 위해 최근 방문했더니 표지석만 남겨져있고 건물 흔적은 다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흥학관은 할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에 대한 결의를 모으고 투쟁에 나선 곳인데, 사라져버려 정말 아쉽다”고 하소연했다.

최씨는 이어 “역사적 의미가 큰 공간인만큼 그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복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단순히 터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재현함으로써 광주시민들에게 항일과 투쟁정신을 널리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동구는 사라진 흥학관의 인식 제고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복원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구 관계자는 “동구의 역사적 인물과 공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하고 산책코스로 만드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최대한 흥학관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흥학관이 다른 공간에 비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복원은 아직 검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혜인 기자 hyein.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