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이기언> 고(故) 이태석 신부와 '섬김의 리더십'
이기언 광주광역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교육학 박사
2023년 01월 02일(월) 12:58
이기언 연구원
며칠 전 ‘우리는 이태석입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교육사업과 의료봉사에 헌신하다 대장암으로 숨을 거둔 고(故) 이태석 신부가 주인공이다. 책에는 KBS ‘추적60분’을 오랫동안 진행하였던 구수환 PD가 영화 ‘울지마 톤즈’, ‘부활’을 만들면서 이태석 신부가 도왔던 남수단 아이들을 취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태석 신부는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로마 유학 중 알게 되었던 남수단으로 가서 톤즈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다. 남수단은 장기 내전으로 국민들 대다수가 굶주림과 질병을 겪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학교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태석 신부는 병원을 지어 매일 수백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이태석 신부는 남수단에서 행복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첫번째 기쁨은 순수한 마음으로 톤즈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기쁨입니다. 두 번째 기쁨은 나눔을 받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 즉 되돌아오는 기쁨이 그것입니다.”

이태석 신부가 가르친 학생들은 가난과 전쟁으로 학교조차 다닐 수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현재 의사, 약사, 기자, 공무원이 되었고, 의과대학생은 40명이 넘는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이태석 신부에게서 받은 것처럼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된 제자들은 환자를 진료할 때 어디가 아픈지를 묻기 전에 환자의 손을 잡고 눈맞춤을 하며 환자를 안심시키는 일을 먼저 한다. 그리고 환자가 누구이든 차별하지 않고 치료한다.

필자가 속해 있는 봉사단체 (사)선한영향력은 동남아 등 제3세계 국가들을 직접 찾아가 의료, 교육, 환경 개선을 돕고 있다. 2013년부터 매년 태국, 라오스, 미얀마 등지를 찾아가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이후 끊겼던 해외활동을 지난해 다시 재개했다. 라오스에 이어 지난달에는 태국 치앙라이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치앙라이는 미얀마, 라오스 국경지대인 태국 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과거 마약 재배로 분쟁과 범죄의 온상이었지만, 현재는 아편 재배 대신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도이창 커피’가 그것이다. (사)선한영향력은 이 지역에 있는 메쑤아이 고아원을 후원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직접 현장 활동을 하지 못했던 기간에는 고아원에 와이파이를 설치, 원격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하여 한글과 악기 연주를 가르치고 위생 교육 등도 진행하였다.

지난해 재개된 현장 방문에서는 의료 봉사와 문화예술 활동을 함께 추진하였다. 고아원 근처의 초등학교와 고아원 뒷마당에서 (사)선한영향력 후원단체와 이사들, 고아원 아이들이 준비한 음악회를 열었다. 고아원 아이들은 핸드벨 연주를 준비하였는데, 6번 핸드벨을 담당했던 아이가 연주를 앞두고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 당시 음악회 진행자들이 당황했을 생각을 하면 아찔하지만, 생전 처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생각에 긴장하고 숨어버린 6번 핸드벨 아이의 행동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고아원 원장의 며느리가 재치있게 그 자리에 들어가 핸드벨 연주는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연주를 마친 고아원 아이들은 큰 박수와 격려에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낯선 봉사단체의 사랑과 헌신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미래 인생항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해본다.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 톤즈에서 몸소 보여준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은 ‘섬김(servant)의 리더십’으로 회자되고 있다. 섬김의 리더십은 경청, 공감, 소통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는 다수의 미래교육 관련 연구 보고서에서 미래사회를 살아갈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꼽는 핵심적인 역량과 인성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아는 인간이다.

2022년 한국 사회를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가 뽑혔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고 네탓만 하는 세태를 꼬집는 단어이다. 경청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섬김의 리더십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2023년에는 우리 사회에 섬김의 리더십이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이태석 신부의 묘비에 새겨진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는 문구처럼 사회적 약자들과 내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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