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5월 26일(목) 16:19 |
'7인의 사무라이'가 궁극적으로 지켜낸 것은 무엇일까
영화 '7인의 사무라이'만큼 많이 회자된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그만큼 유명한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토대로 리메이크된 많은 오마주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1954년 개봉하였으니 우리로 말하면 동족상잔의 화마가 채 가시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1910~1998) 감독의 흑백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나 주제는 일목요연하게 사무라이들의 의기투합과 전쟁을 다루고 있다.
'황야의 7인' 등 리메이크된 수많은 영화도 이런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모내기다. 사무라이들의 주제와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 장면이 내게는 대미나 대단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거론하는 수많은 비평이나 담론 중 모내기 장면을 거론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시선이 있는지 모르겠다. 유독 이 장면이 내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유가 뭘까.
15~6세기 일본 전국시대가 배경이다. 산적이 출몰하여 여자와 농작물을 수탈해가는 어느 농촌 마을에서 사무라이들을 고용한다. 사무라이들은 대부분 실직한 이들이어서 지금으로 말하면 부랑아 정도의 캐릭터들이랄까. 이런저런 에피소드 속에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이 모이게 되고 급기야 산적들과 전쟁을 치른다.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은 각각 독특한 성격을 연기하는 캐릭터들이어서 스토리의 전개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을 거장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산적들과의 전쟁이 전체 장면을 이끌고 가지만, 세밀하게 묘사되는 당시 일본 농촌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리 수확하는 들녘의 풍경이며 모내기하는 산전답의 풍경이 그렇다. 산적과의 전쟁에서 이기지만 마을 사람들과 감베이, 시치로지, 가츠시로 세 명의 사무라이만 살아남는다. 사무라이의 대장 캄베이가 엄숙하게 말하며 영화가 끝난다. "또다시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졌다. 이긴 것은 저기 농민들이야." 무슨 뜻일까?
여러 평론을 보면 사무라이와 농민들의 계급적 변별, 별 대가 없이 고용된 사무라이들의 신분적 한계, 결국 농민들 혹은 고용주(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운명, 이런 종류의 해석이 주류를 이루는 듯하다. 사무라이를 주제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구로자와도 예기치 못했던 대미의 장면이랄까. 결국 사무라이를 고용해서 이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목표 혹은 목적이 무엇이었나 하는 점에 생각이 미치면, 마지막 장면이 또 달리 보일 수 있다. 산적들이 약탈해가던 것이 여자나 농산물뿐만 아니라 마을 풍경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구로자와가 드러내고 싶었던 일본적인 어떤 것, 마치 우리네가 근자에 열광하는 한류(韓流)와 같은, 한 때 글로벌한 바람을 일으켰던(지금도 그러하나?) 일본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 이후 리메이크되거나 오마주(구로자와에 대한 존경의 모사로서)된 일본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회자되고 확장된 것이 그 사례이지 않을까. 비록 흑백으로 표현되었지만 수려한 일본의 산천과 보리와 쌀과 북장고 두드리는 리듬과 사람들의 노래와 어쩌면 문명 담론 같은 그런 풍경 말이다.
우리에게 쌀은 무엇인가
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의 모내기는 우리네 남도지역의 모내기와 많이 닮았다.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모내기 풍경이기도 하다. 우리의 고대 악기 비슷한 요고(腰鼓)와 흔히 벅구나 법고로 호명되는 작은 북, 꽹과리와 비슷한 작은 징쇠, 차양 넓은 볏짚모자며 모심는 동작에 맞춰 부르는 노래 따위가 그렇다. 일본의 남쪽 섬들인 아마미오오시마나 오키나와 등지의 모내기는 지금도 이런 풍경이 연출된다. 머리에 덩굴풀을 두르고 이런저런 의례와 함께 모내기를 하는 것은 내 고향 진도의 들노래 풍경과 흡사하다. 중국의 동북지역이 양걸(秧歌) 장르로 확장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가 십수년 답사했던 동아시아의 모내기 장면이 대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다르지 않다. 대미(大尾)의 장면이 내게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이었다. 은연중 드러난 혹은 숨겨진 메타포, 쌀을 지키기 위한 서사 말이다. 구로자와가 말하고자 했고 마을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내면의 풍경, 예컨대 중국의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이 <붉은 수수밭> 등 수많은 영화와 연출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붉은색의 중국에 비견된다고나 할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내고자 했던 생태환경 중심의 애니메이션 풍경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나는 이 영화의 이면에 숨어있는 쌀을 봤다. 쌀이 가진 동아시아적 배경, 쌀이 가지는 문명적 함의 때문일 것이다. 감베이의 마지막 대사처럼 전쟁에서 그들이 지켜낸 것은, 다름 아닌 모내기의 풍경, 쌀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무라이의 시선에서는 이기고 지는 싸움일 것이지만 마을 사람들 시선에서는 대대로 살아온 마을과 사람과 풍경과 그 기반이 되는 쌀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묻는다. 일본에게 쌀은 무엇인가? 왜 그들은 쌀을 지키려고 했던 것인가? 내게 질문한다.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쌀은 무엇인가? 나는 그리고 우리는 쌀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했던 것인가?
여기서의 쌀을 문화나 문명으로 바꿔 읽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바야흐로 모내기철에 들어선다.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우리네 고향에서는 북치고 장구치고 작은북 벅꾸 두드리며 모내기를 했다. 마치 영화 '7인의 사무라이' 마지막 장면처럼 모내기 노래를 불렀다. 머리에는 덩굴풀 뜯어 감고 차양 깊은 삿갓이 무논에 잠기도록 느린 굿거리장단에 호흡을 맡겼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런 목적도 없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그런 리듬이 있어 쌀을 지켰다. 영화 속의 사무라이 같은 누군가 있어 어떤 불한당 산적들을 '이길 수' 있었다. 모내기철을 맞는 지금의 내 마음이 그렇다. 사무치는 어떤 그리움이 논둑에 나를 불러세우는 것인가. 누가 산전답 어딘가에서 목청 높여 쌀을 노래하는 것인가.
남도인문학팁
은유의 쌀, 정체성으로서의 쌀
쌀은 전 세계 대륙 전체에서 재배하고 먹는 곡물이다. 열대몬순, 온대몬순, 실크로드, 유럽, 미국 등을 포괄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섭취하는 전분의 22퍼센트가 쌀에서 나온다. 통계에 따라 순위는 달라지지만 밀, 옥수수와 더불어 3대 곡물이다. 아마 쌀을 기피하고 빵을 선호하는 우리네 식습관의 변화대로 밀의 수요가 훨씬 많아졌을 것이다. 고기를 즐겨 먹는 식습관 변화로 사료용 곡물이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디카, 자포니카로 대변되듯 쌀은 아시아의 문화 혹은 문명을 대변한다.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기회가 되면 쌀의 문명사를 따로 다루겠지만 우리에게 쌀은 '생명'의 또 다른 은유이기도 하다. '쌀의 인류학'을 쓴 오누키 에미코는 이 책에 '일본인의 자기인식'이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쌀이 타자와 비교되는 '자기 자신'이며 일본의 상징이고 은유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쌀이 내 자신인가. 우리의 은유인가. 쌀을 통해 나의 정체를 혹은 내가 한국인임을 인식할 수 있는가. 사방의 무논에 모내기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회다. 우크라 전쟁으로 식량자급에 대한 대책들이 논의되는 모양이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아직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쌀을 지키는 것이 내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