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1월 02일(일) 18:09 |
단군 신화에도 등장하는 호랑이는 한국인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동물이다. 조상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하면서도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다. 전남에서는 아직까지도 예전에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거나 호랑이를 직접 봤다는 목격담이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영광 불갑면 불갑산, 삼각산, 백수읍 구수산 등 인근 마을 주민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다.
담양 메타프로방스에서도 호랑이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곳은 실제 호랑이가 살았던 곳이 아닌 공방 운영자가 카페에서 호랑이빵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호랑이의 해인 임인년을 앞두고 호랑이빵을 맛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점차 늘고 있다. 임인년을 맞아 호랑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영광과 담양을 찾아가 봤다.
●실제 호랑이가 나타났던 영광 불갑산
"호랑이 하면 산속에 사는 호랑이를 먼저 떠올리는데 오히려 호랑이가 바닷가 인근에 많이 나타났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옛날부터 불갑산에 살고 있는 호랑이가 주민들이 기른
가축, 논·밭작물을 헤집고 다녔다고 호랑이를 잡기 위해 덫을 놓는 곳을 뜻하는 '덫고개'라는 지명까지 유래될 정도였습니다."
영광군 문화관광해설사로 10년째 활동하고 있는 서화주(55)씨의 설명이다.
지난달 31일 찾아간 불갑산(영광군 불갑면 불갑사로 450) 일원. 불갑사로 향하는 일주문을 지나자 인도 한쪽에 호랑이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사찰 입구에 호랑이 조형물이 있어 의구심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과거 실제 호랑이가 잡혔던 장소다.
1908년 2월 영광 불갑산 덫고개 기슭에서 호랑이가 농사꾼이 파놓은 구덩이에 빠진 호랑이가 사흘 밤낮을 발톱으로 벽을 긁으며 발버둥을 치다가 힘이 빠져 최후를 맞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기록은 일본인 모리타메조(경성제국대학 교수)씨가 1928년에 저술한 '과학지식이' 책 8권 '조선의 호랑이'편에 기술돼 있다.
당시 목포항은 일본에 개항돼 일본인들의 왕래가 잦았다. 목포 유달초등학교 인근에서 다다미상으로 활동했던 일본인 하라구찌씨가 영광에서 호랑이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논 50마지기 값인 200원(현 시세 3억원)에 샀다. 우마차를 사용해 이틀 동안 운반, 일본 동경 시마스제작소에 가져가 호랑이를 박제해 1909년 목포 유달초에 기증했다.
박제된 호랑이는 1909년부터 현재까지 113년 동안 목포유달초등학교 복도에 전시돼있다.
호랑이의 모습을 살펴보면 생후 5년에서 13년쯤 된 암컷으로 추정된다. 가슴 쪽에서 엉덩이까지 160㎝, 앞발 뒤꿈치에서 머리까지 95㎝로 무게는 180㎏에 달한다. 생김새는 뒷머리 부분에 황갈색 바탕의 검은색 줄무늬가 있어 왕(王) 자가 선명한 한국호랑이의 특징을 뽐내고 있다.
이 호랑이가 최초로 잡힌 곳은 불갑산이지만 목포유달초에 박제된 상태로 전시돼있는것이다. 영광군이 2차례(2009년·2015년) 이전 요청을 했지만 목포유달초 측은 완강히 거부했다.
목포유달초가 거부한 데는 기증자(일본인 하라구찌 쇼지로씨) 후손들이 지속적으로 학교를 찾아오고 있고 재학생·동문·학부모를 상대로 이전에 대한 찬·반 설문을 한 결과 97%가 반대해서다.
영광군은 호랑이 해를 기념해 처음으로 호랑이가 잡힌 불갑산을 외부 관광객들에게 알리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택신 영광군 문화관광진흥팀장은 "과거 호랑이가 잡혔던 불갑산 일원은 상사화가 식재돼있어 매년 9월 상사화 축제를 열 정도로 기본적인 관광자원이 갖춰진 곳"이라며 "올 한 해 호랑이가 처음 잡혔던 당시의 기록과 호랑이 기운을 정확히 전파하기 위해 '불갑산 호랑이'에 대한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호랑이 빵'도 있네
같은 날 찾은 담양 메타프로방스(담양군 담양읍 깊은실길 2-17). 대형 트리가 위치한 벽면 한쪽에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가게가 보인다. 2014년부터 메타프로방스 내에 해드리움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유영선(55·여) 대표다.
유 대표는 조선대 금속공예학 전공자로 광주 동구 예술의 거리에서 귀금속 공방을 운영하다 담양으로 이주해 8년째다. 담양군 금속공예명인 9호로 등재되기도 했던 유 씨는 공방을 운영하던 중 코로나19로 인해 메타프로방스를 찾는 외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자 카페를 결합하기로 결심했다.
유 대표는 "본래 전공을 살려 귀금속공예만 40년을 하다 보니 처음 카페를 어떻게 공방과 결합해야 할지 고민했다"며 "광주 동구에 위치한 '무등산호랑이카페'에서 호랑이 모양의 빵을 판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 빵 제작 틀만 구매해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지난해 5월부터 담양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댓잎 가루, 현미가루, 아몬드, 국산 팥을 사용해 호랑이 빵을 만들고 있다. 빵의 겉모습은 호랑이 얼굴 형태를 띠고 있다. 빵을 한입 먹어보면 밀가루 반죽이 아닌 현미가루를 사용해 부드럽고 속 내용물에는 팥과 댓잎 가루를 넣은 찹쌀떡이 들어가 있어 치즈처럼 늘어나면서 쫄깃함을 선사한다.
유 대표가 공방과 카페를 결합해 호랑이빵을 선보인 결과 입소문을 타면서 외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유 대표는 "주말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아메리카노 커피 2잔과 호랑이빵 2개에 1만원에 판매되는 조합이다"며 "주말에는 공방 특징을 살려 커플링 만들기 체험(팔찌·목걸이 등)도 운영하고 있어 호랑이빵을 먹으며 커플링을 만들어 보기 위해 평균 15쌍의 커플이 다녀간다"고 말했다.
호랑이의 해 유 대표가 바라는 점은 코로나19 일상 회복이며 본래 전공인 귀금속 공예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할 계획이다.
유 대표는 "딸도 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과에 재학 중인데 코로나19로 대학생활의 재미를 못 느낀 '코로나 세대'다"며 "올해에는 커플링 만들기 체험 외에도 수저·젓가락 등 일상생활 용품에 호랑이 문양을 새기는 체험을 확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