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와 함께 마한문화권도 국가적 차원 개발 절실
定道 천년 전라도의 재발견-마한 옥문화 사업의 현주소
中.日은 옥문화 연구 활발
한국은 사회적 무관심에
전문 연구자도 절대 부족
2018년 07월 05일(목) 21:00
함평 초포리 유적에서 발굴된 곱은옥. 뉴시스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한반도의 제주도 고산리(1만년 전), 강원도 고성 문암리(8000년 전), 여수 안도리 패총(6000년 전) 등 일련의 유적지에서 옥으로 만든 귀고리가 발견되었다.

이는 제주도에서는 옥산지가 없기 때문에 1만년 전에 이미 제주도와 한반도 서남해안과의 인적 교류와 문물교류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역사적 유물이라는 것이다. 옥 귀고리의 발견은 지금부터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옥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시대적 공간을 보더라도 한중일 삼국의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한반도 서남부 지역과 제주도 사이의 바다는 지정학적으로 한중일 삼국의 국가적 차원은 물론 호남 지역사회에 있어서도 거의 생명줄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해상왕 장보고(張保皐?∼841)의 청해진, 조선 임진왜란 때의 진도 명량대첩 등 일련의 역사적 경험을 보더라도 호남은 한반도 내륙 지역의 육로와 하늘 길이 열리지 않았던 시절부터 국가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왕조들은 청해진을 고려 시대(1351)까지 실시한 공도(空島) 정책으로 500여년 동안 방치해버린 결과, 한반도의 해상세력은 결정적으로 약화돼 동아시아 해상 지배권을 상실하게 됨으로서 결국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한테 우리의 앞마당을 내준 꼴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절름발이식 국가 경영을 초래하게 되었고, 반도국가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육지와 해상에 대한 국가 경영의 한축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청해진 폐쇄이후 사실상 중일 양국 체제의 틀에 갖힌 채, 이미 천 여 년의 기나긴 세월이 흘러버렸다는 것이다. 올해 2018년은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이하는 역사적 시점에서 다시 돌아볼 때도 여전히 호남지역은 국가 성장 동력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지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지난 천년 동안 호남지역의 소중한 가치를 소홀히 한 채 절름발이 국가경영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거둔 성과라고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균형을 맞추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 정부에서 지역사업으로 내걸고 있는 ‘영산강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기본계획’은 중앙 집권과 지방분권이라는 큰 틀을 전제하더라도 당연히 국가적 차원의 거시적 관점에서 정책과 예산집행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 행정부(문체부), 도, 시군 등과 관련된 해당 부서의 유기적 조직과 각종 세부 사업을 비롯한 전반적인 업무추진에 따른 효율적 추진과 관리를 위해 통합관리 주체 즉 콘트롤타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 호남지역 사회의 뿌리의 근간으로서의 ‘마한’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사업 추진은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중앙 정부 차원의 예산과 행정 업무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현재 진행중인 문재인 정부의 ‘가야’ 지역에 대한 연구.복원 사업 목적 가운데 영.호남 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는 성격을 보더라도 우리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사업에 소요되는 예산이 국비로 추진되고 있음은 실로 획기적이고 평가할만 하다.

그러나 ‘가야’와 더불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마한’지역에 대한 연구.복원 사업은 계획안 뿐 아니라 예산이나 추진 주체 등 아직도 상당히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가 ‘마한’사업을 ‘가야’사업과 함께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현재 일본 정부가 역사적 가공물 ‘임나일본부’를 등장시켜 한반도 남부 지역에 버젓이 그려 놓고 일본 국민을 상대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야’만 가지고는 한쪽만 지키는 꼴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쪽을 내주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역도 대한민국이고 ‘남’이 사는 지역도 대한민국이 아니겠는가. 호남지역의 뿌리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마한’은 단순하게 백제의 병합대상으로서가 아니고 그 이전부터 한반도 서남부에 역사적 실체로서 장기간에 걸쳐 존재했던 고대국가였다는 것이다.

특히 마한에 관한 기록은 한중일 삼국의 역사적 문헌기록에 모두 등장하고 있는 역사적 실체로서 들어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반도 서남부 해안을 중심으로 한 호남지역은 크게 나누어 해안 지역 세력과 영산강이나 섬진강 등 큰 강 유역에 거주하는 내지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호남지역에는 선사시대로부터 고조선, 마한시대를 거치면서 벼농사에 관한 유적은 물론, 고인돌, 옹관묘 등 다양한 묘제와 더불어 부장품으로 청동무기와 의기류 등 한국식동검문화단계의 유물들이 이른 시기부터 풍부하게 발견된다.

즉, 위계화가 상당히 진행된 정치집단이 출현하여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있다. 한국식동검이나 잔무늬거울은 대부분 무덤에서 옥, 토기 등 다양한 껴묻거리와 함께 출토된다. 특히 영암 장천리, 화순 대곡리 등을 포함한 한반도 서남부 지역의 경우 남한에서 강력한 지배자가 가장 먼저 출현하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결국 청동기 시대에 등장한 고대국가 ‘마한’의 역사적 실체를 입증할 수 있는 역사적 유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서남부 마한지역에서 출현한 옥기와 청동기(검.거울) 유물로 구성된 융합적인 문화 형태는 일본열도로 벼농사와 함께 전해져 ‘야요이 문화’(기원전5,3세기-기원후3세기)’의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일본의 삼종의 신기(三種의 神器)는 청동 검, 청동 거울, 곡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신타니교수는 “죠몬시대부터 야요이시대를 거쳐 고훈시대, 그리고 유품으로서 나라시대의 정청원 보물로서 남아 있는, 일본 고대사회에서 긴 명맥을 가진 보물이 곡옥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중국측 문헌기록에 의하면 “삼한인은 구슬을 財寶로 삼아 옷에 매달아 장식을 하거나 목이나 귀에 매달지만, 금 은과 비단 자수는 보배로 여기지 않았다”라고 한다. (三國志]魏書 韓專條 “以瓔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懸頸垂耳 不以金銀繡爲珍”. 後漢書 東夷列傳 韓條. 晉書 列傳 四夷傳 馬韓條) 이와 같이 역사적 유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옥문화는 기존의 축적된 역사 연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문명사회로 전환되는 역사적 대전환기에 있어서 여전히 공백 상태로 남아있는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옥문화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현재진행형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사회적 무관심과 학술 연구 등 전문 연구자의 절대적 부족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동북아시아 옥 문화의 국제적인 종합적인 비교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옥문화 연구를 본격화시키는 역사적 대전환점이 될 것이다. 특히 옥문화는 중국 연해 지역의 요하,황하,장강 유역과 일본의 큐슈 지역 등의 동아시아 공동체적인 문화현상이다. 그 연대에 대해서는 동시기이거나 서로 연속될 수도 있고 구조와 형태에 대해서는 서로 공통되거나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이들 간에 존재하는 밀접한 상호 연관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각 국가와 지역별 옥 문화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이들 간의 비교연구와 동북아 옥 유물들의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각 지역별 옥기 유물들에 대한 관계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옥 문화 대한 일치된 인식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한중일 삼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역사 전쟁을 극복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회의식에 필요한 역사적 단서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관점에서 영산강 유역의 ‘마한’의 옥 문화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전제로 한 ‘영산강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사업은 현 정부의 ‘가야’ 지역에 대한 사업과 더불어 국가적 차원에서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충분한 역사적 필요성과 당위성이 있다는 것이다.



定道 천년 전라도의 재발견 - 정건재 전남과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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