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구조하겠습니다"
공 프로젝트 4. 소방관의 헌신
박형주 광주시 소방안전본부 소방위
불 타는 건물에 뛰어드는 것
목숨 걸겠다는 희생정신
2018년 04월 01일(일) 21:00
박형주 소방위는


광주시 소방안전본부 119특수구조단 박형주 소방위는 자타가 공인하는 '멀티 소방관'이다.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구조업무 외에 응급처치 분야에도 탁월한 실력을 과시했다. 실제 그는 휴가 중 또는 근무지 복귀 중 신속한 심폐소생술로 심정지 환자 3명의 목숨을 살렸다.

박 소방위는 활발한 교재 편찬 및 강연활동으로 소방관 역량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수사고대응 종합 직무기술서'와 '화생방 테러 대응 교재 교안', '초동대응전술의 화학사고시 현장지휘소 선정에 따른 개선방안' 논문 등을 펴냈다.

특히 박 소방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구호대원'으로 선발돼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2013년 태국에서 진행된 아세안 지역 안보포럼 재난구호훈련과 2014년 서울에서 열린 UN국제탐색구조자문단 국제회의에 참석했고, 2015년에는 네팔에서 지진 긴급구호활동을 벌였다.

박 소방위는 다수의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화재 진압을 하다 보니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불을 다뤄보고 싶다는 욕심에 12주간의 교육을 받고 '화재조사관'자격증을 취득했고, '화재감식기사', '인명구조사' 자격증도 땄다.

최고의 소방관이 되기 위한 그의 남다른 노력은 최우수 모범구조대원 2회 선정, 국민안전처 장관상(안전지킴이상), 행정안전부 장관상(소방행정 유공), 모범공무원 대상, 모범시민종합대상, 광주시장 표창 등 20여 차례의 수상으로 이어졌다.




"날카로운 철근과 콘크리트 잔해 더미를 헤치고 진입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우리는 붕괴된 구조물을 파헤치며 포복자세로 진입을 시작했다. 조금씩 공간이 확보됐고, 2시간이 지났을 쯤 콘크리트에 눌려 움직임도 없이 누워서 눈만 깜박거리는 작업자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그 어떠한 것보다 맑고 밝은 눈망울이었다."

광주시 소방안전본부 119특수구조단 박형주(44) 소방위는 지난 2013년 6월6일 광산구 월계동 주상복합건물 공사장 붕괴현장에서 벌였던 생존자 수색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고현장에서 처음으로 찾아낸 작업자에게 그가 건넨 첫 마디는 "살아있어 줘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반드시 구조 하겠습니다"였다. 당시 박 소방위는 선임 구조대원으로 동료들과 9시간의 사투 끝에 6명의 작업자를 모두 구조했다. 소방관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었다.

불길이 타오르는 건물 속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조하는 일, 말 그대로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직종보다도 헌신과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게 소방관이다. 15년간 구조대원으로 활약한 박 소방위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람을 구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재난현장에 뛰어들지만 소방관이란 직업을 선택한 걸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소방관은 평생 꿈꿔왔던 직업"

어렸을 때부터 제복을 입는 직업을 동경했던 박 소방위는 착실히 소방관의 꿈을 키워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태권도를 시작했고 열심히 공부하며 체력을 단련시켰다. 그리고 20살의 어린 나이에 특전사에 입대했다. 구조대원으로 소방관이 되기 위해선 군 특수전 부대 근무 경력이 3년 이상인 자로 하사 이상의 계급으로 1년 이상 실무경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소방관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가 육군 특수전 사령부 11공수특전여단 중사로 전역한 1997년 국가부도위기의 IMF사태가 대한민국을 덮치면서 신규 채용은커녕 거리엔 실직자가 넘쳐났다.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조그만 회사에 취직해서 세일즈맨으로 생활하길 5년여. 2003년 그토록 열망했던 소방관 구조대원의 꿈을 이루게 됐다.

평생 꿈꾸던 직업을 얻었지만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반성도 많이 한다. 시민에 대한 헌신과 희생이라는 소방관의 본분에 소홀하진 않았는지, 안타깝게 시민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 기억 등은 가슴 한 켠을 무겁게 한다. 앞으론 후회하지 않는 소방관이 되기 위해 마음가짐을 다잡고 있다.



소방관을 떠받치는 힘, 가족들

위험 속에 놓인 인명을 구조할 때마다 소방관 직업에 긍지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만 가족에게는 항상 미안하다. 부인, 아들, 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린 박 소방위는 겉으로 표현을 하진 않지만 가족들의 걱정이 많다는 걸 잘 안다.

언젠가 딸이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빠는 불에 들어가면 안 뜨거워? 물속에 들어가면 안 추워? 죽은 사람 보면 안 무서워?'라고. 그는 '응. 아빠는 소방관이라 뜨거운 것이 없고 아무도 안 무서워!' 라고 답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땐 아빠가 소방관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는데 중ㆍ고생이 된 자녀들이 이젠 아빠를 조금씩 걱정하는 게 느껴져 부담스럽다.

마음과는 달리 때론 부인이나 자녀에게 서운하다는 얘기를 할 때도 있다. "광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다른 소방관 가족들은 '위험하지 않았느냐'며 걱정을 해주는데 우리 가족은 왜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느냐"는 애교 섞인 투정이다. 하지만 그는 안다. 사건ㆍ사고 발생 소식을 접할때부터 모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남편, 아빠를 걱정했을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소방관의 부인은 명예 소방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구조현장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간접체험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소방관 못지않은 스트레스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집에선 소방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는다.



'사고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

박 소방위는 스스로를 '사고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라고 말한다. 광주 남부소방서, 북부소방서, 동부소방서, 서부소방서, 광산소방서 등을 거쳐 광주소방본부 특수구조단에 이르기까지 그가 배치된 곳에서 유독 대형사건ㆍ사고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형사고 있는 곳에 그가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는 화재, 구조물 붕괴, 수난사고 등에 자주 출동했다. 실제 그는 지난 2014년 7월 세월호 수색작업 지원에 나섰던 강원소방본부 소속 헬기가 광주 도심에 추락해 5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현장에 제일 먼저 출동해 사고를 수습했다. 동료 소방관의 죽음을 목격하고 '헬기 완파, 전소, 생존자 없음'이라며 상황실에 보고할 때 많이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픈 기억이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줬다. "이상하게 대한민국에서 규모가 큰 사건ㆍ사고 현장 출동을 많이 했다. 주위에서 '박형주는 사고를 몰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며 "괴로웠었는데 한 선배가 '네가 그 현장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해줘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소방관 임용 후 처음 지급받았던 화재진압헬멧 부착물인 물받이를 15년 동안 간직하고 있다. 이젠 많이 낡아 제 기능을 할 수 없지만 여기엔 15년 전 소방관으로서 약속했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내가 지킨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다짐이다.



"국민들의 따뜻한 격려가 힘"

박 소방위의 좌우명은 '신애인화(信愛仁和)'. '믿음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 있고, 어진 마음이 있어야 화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생사의 현장에서 동료를 믿고 의지해야 하는 소방관에게 요구되는 마음자세라는 생각이다.

소방관들은 매번 위험을 안고 현장에 투입되다 보니 자연스레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 강하다. 그는 "특히 소방관은 2인1조 또는 단체로 현장 활동을 하는 조직이라 직원 간에 신뢰를 하지 못하면 개인은 물론 시민의 안전도 책임질 수 없게 된다"며 "나의 안전보다 동료의 안전을 더욱 우선시하는 조직이 바로 소방관이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이지만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결과가 나쁘면 초기대응 실패, 늑장출동 등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건 무척 안타깝다. 그는 "소방관들은 출동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단 한치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고 신속하게 출동하며 차량 안에서 현장대응을 위한 연구와 의논을 한다. 늑장출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현장 활동을 하는 소방관들에게 용기는 주지 못할지언정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씀은 삼가 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 소방위는 국민들의 끊임없는 격려가 자신과 동료들을 화마 속에 뛰어들게 하는 원동력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제55회 소방의 날 행사 때 문재인 대통령이 '소방관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국민의 손을 가장 먼저 잡아주는 국가의 손'이라고 말씀하셨다"며 "국가의 손이 될 수 있도록 소방의 손을 국민 여러분께서 먼저 잡아주신다면 대한민국의 안전은 소방이 책임지겠다"고 다짐했다.


글=박성원 기자 swpark@jnilbo.com

사진=김양배 기자 yblim@jnilbo.com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쏜살같이... 최정예 48명

광주시 소방안전본부 119특수구조단은 화학사고, 방사능사고, 테러 등 각종 특수재난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됐다.

특수구조단은 특수구조대, 산악구조대, 항공구조대 등 48명의 최정예 특수구조대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2015년 10월12일 발족했다. 지난해 3월에는 총사업비 27억여원을 들여 신청사를 광주 광산구 쌍암동에 개청했다. 특수구조단은 생화학 인명구조차ㆍ제독차 등 최신 특수재난대응차량을 갖추고 있다. 특히 화생방 제독차의 경우 광주 119특수구조단이 지역 소방본부 중 처음으로 보유했다.

최첨단 장비와 탁월한 구조능력을 지닌 특수구조단은 전국 소방본부에서 앞다퉈 견학을 올 정도의 '선진 구조단'으로 유명하다.

특수구조단은 지금까지 2000여 차례 출동해 1500여명을 구조했다. 특히 일반 소방장비로는 접근하기 힘든 재난사고 현장에서 특수구조단의 활약이 빛을 발했다.

지난해 9월 북구 용전동 영산강변에서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실종된 70대 남성의 시신이 119특수구조단에 의해 발견됐다. 119특수구조단은 불어난 강물에서 드론과 소방헬기를 띄워 5일만에 사고 지점 1.5㎞ 떨어진 지점에서 남성의 시신을 찾았다.

앞서 지난해 8월에는 광주 동구 소태동 원지교 밑 광주천변 산책로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급류에 휩쓸렸을 때도 119특수구조단이 출동, 첨단 장비로 수색해 발견했다.

119특수구조단 최한주 특수구조대장은 "광주 119특수구조단은 광주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재난과 특수재난에 대비해 신속하고 체계적인 재난대응 시스템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화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