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찾아 왔지만 새아빠 불편했고 한국말은 어려웠다
다문화정책 10년 점검 ● 중도입국 자녀
부모가 한국인과 재혼해 입국
여가부, 국내 3만여명 추산
한국 태생 다문화 자녀와 달리
2017년 10월 19일(목) 00:00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의 프로그램에 참여해 국내 대학 탐방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재단이 중도입국 청소년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한국어 수업.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제공


한국으로 시집간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기쁨과 설렘은 아주 잠깐일 지 모른다. 국적이 다른 새아빠와의 갈등, 낯선 언어와 문화, 그리워했던 엄마에겐 혈육의 친근함을 예전만큼 느낄 수 없다. 중도입국 자녀들의 상당 수는 한국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한국어를 익힐 수가 없으면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없다. 일부는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두번 버림 받았다는 비참함과 함께.

중도입국 자녀란 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다 뒤늦게 부모를 따라 한국에 입국하게 된 청소년을 말한다. 외국인 부모를 따라 입국하게 된 경우도 해당되는데, 대개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들어온 아이들이다.

한국에 중도입국 자녀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한 추산이 불가능하다. 여성가족부에서는 최근 3만여명으로 어림잡아 집계하고 있고, 법무부에서는 2015년 체류자격을 기준으로 4200여명으로 추산했다. 교육부에서는 재학중인 학생을 기준으로 지난 8월현재 6600여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광주에서는 지난 8월 현재 초등학생 51명, 중학생 23명, 고등학생 30명 등 104명의 중도입국 자녀가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학생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입국 자녀들은 일반 이민 가정의 자녀나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 자녀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언어가 서툰 것은 물론, 정서적 이질감도 상당하다. 지역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중도입국 자녀와의 인터뷰를 수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광주 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노효경 교사는 "엄마의 재혼가정으로 입양절차를 밟고 있는 중도입국 자녀들을 상담해보면 폐쇄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교육현장으로 이끌어 내기까지 어려움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부모님이 교육에 대한 열정이 있고 자녀 또한 의지가 있으면 한국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수월한 편이다. 특히 자녀의 나이가 어릴수록 한국어를 빨리 배우고 적응을 잘 한다.

문제는 중학생 이상의 자녀들이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한국문화에 대한 이질감이 높고 언어 습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어 습득이 어려우면 상급학교로의 진입이 불가능하다.

노 교사는 "1년 가량 예비학교에서 한국어교육을 받으면 일상생활에서 소통은 가능하지만 고등교육을 받기위해선 더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자녀의 연령이 높을수록 한국어 습득이 어려워 중ㆍ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중도입국 자녀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한국어 교육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광주지역에서는 현재 새날학교와 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예비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광주시교육청에서도 '찾아가는 예비학교'를 시행해 중도입국 자녀들의 학교생활을 돕고있지만, 중도입국 자녀들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가 걸림돌이 되고있다.

중도입국 자녀가 예비학교인 새날학교에서 한국어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지역 초, 중, 고교에 먼저 입학해야 한다. 어릴수록 적응이 빠른 까닭에 대부분 초등학교에서는 중도입국 자녀의 입학에 대해 관대하지만, 중ㆍ고등학교에서는 꺼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청에서 중도입국 자녀를 받으라고 학교측에 지속적으로 권유는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학교측의 거부감이 심한건 사실"이라며 "행정적인 업무가 가중되는데다 중도입국 자녀들이 학교에 물의를 일으키거나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부담감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북구다문화지원센터에서는 자체적으로 '레인보우 스쿨'을 운영해 10여명의 중도입국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문화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도입국 자녀만을 대상으로 정부에서 사업비, 운영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이 아닌, 필요에 의해 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프로그램이다보니 2~3명의 교사가 부수적으로 이 업무를 맡아 프로그램을 근근히 이어가고 있다.

노 교사는 "레인보우 스쿨의 호응이 높지만 지원환경이 열악한 탓에 소수의 교사들이 부수적으로 한국어 강의와 상담 등 1인 다역을 해내고 있다"며 "호응이 높은만큼 전담 교사가 배정되고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면 긍정적인 교육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개월에서 1년 가량 이뤄지는 한국어 교육이 아쉽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보통 1년가량 언어교육이 이뤄지면 기본적인 소통은 가능하지만 학업적인 부분에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중도입국 자녀들의 진학률이 낮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력이 낮으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는데 한계가 따르는만큼 지속적인 한국어 교육과 함께 검정고시를 치를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 교사는 "중도입국 자녀 중 초등학교는 누구나 간다. 중학교는 간혹 가고 고등학교는 거의 안간다"며 "한국어가 안되기 때문에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집 밖으로도 나오지 않는다. 가정불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학력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 단기일자리나 일용근로직 등에 전전하게 된다. 이들이 한국에서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 밖 중도입국 자녀들이 한국에서 한가닥 희망을 안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선 검정고시 등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상지 기자







광주시교육청은 초, 중, 고에 재학중인 중도입국 자녀들의 적응과 한국어 교육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찾아가는 예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예산 8170만원을 투입해 광주지역 19개 학교에 '찾아가는 예비학교'를 시행, 호응을 얻었다. '찾아가는 예비학교'는 중도입국 자녀가 재학중인 학교에 한국어 강사가 찾아가 방과후 혹은 일부 수업시간에 중도입국 자녀를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이해 수업이 진행된다. 수업은 학생 한명당 주5시간씩 3개월간 60시간을 이수하게 되며, 재교육이 필요할 경우 2학기에도 지속적으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중도입국 자녀의 국적이 다양한만큼 한국어수업에는 11개언어 통번역이 지원된다.

광주시교육청은 하반기에도 437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11개 학교에 '찾아가는 예비학교'를 운영하는 중이다. 현장에서 호응이 높은만큼 내년에도 '찾아가는 예비학교'를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광주시교육청 서은화 장학사는 "다문화정책이 일반적인 다문화가정자녀쪽으로 편중된 까닭에 상대적으로 중도입국 자녀에 대한 교육정책이 부족하다"면서 "찾아가는 예비학교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중도입국 자녀만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예상외로 학교에서의 만족도가 높고 학생들이 한국어를 빨리 배우는 등 효과가 높아 내년에도 확대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상지 기자 sjpark@jnilbo.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