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의병장의 흔적을 광주에 남겨달라"
오늘 '의병의 날'… 잊혀진 의병장
한말 父子 의병장 서암 '양진여' 설죽 '양상기'
호 딴 '서암로''설죽로' 교차지점 표지석 없어
의병장 광주 생가는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
2017년 06월 01일(목) 00:00
구한말 광주에서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에 맞서다 순국한 양진여(왼쪽)ㆍ양상기 의병장의 영정 부자 의병장 서암 양진여ㆍ설죽 양상기 기념사업회 제공

일제에 맞서 목숨을 바친 광주 항일 독립투사들의 흔적이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다.

구한말 광주에서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에 맞서다 순국한 양진여ㆍ양상기 '부자 의병장'의 생가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이들을 기리는 장소에는 표지석조차 없는 실정이다.

양진여 의병장은 1908년 광주 북구 삼각산에서 거병해 의병부대를 조직한 뒤 당시 일본군 나까코지 군조의 토벌대와 교전하며 신촌ㆍ 대치 전투 등의 의병활동을 펼쳤다. 양진여 의병장의 큰아들인 양상기 의병장도 1908년 광주에서 거병해 '한국의 복구'를 주창하며 80여 명의 규모의 부대를 화승총으로 무장시켜 일제에 맞서 싸웠다. 대표적인 전투로 외북면ㆍ덕곡리 전투가 있다. 그러나 두 의병장은 화력열세로 패전하게 되면서 체포돼 1910년 내란죄로 교수형을 당했다.

그렇게 '부자 의병장'은 현재 '광주의 기억'속에서 지워졌다.

의병의 날(6월1일)을 하루 앞둔 31일 광주 북구 중흥동의 양진여ㆍ양상기 의병장의 생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두 의병장의 생가를 알리는 간단한 문패조차 없었고, 여느 주택과 별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의 귀띔으로 겨우 찾았지만 두 의병장의 생가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주택이었다.

양진여 의병장의 증손자인 양규철(67)씨는 "현재 생가는 유족과 관련없는 일반인 소유로 돼 있다. 당시 일본 순사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집이 넘어가게 됐다"며 "생가가 위치한 중흥동이 재개발될 예정이다. 재개발 과정에서 생가복원과 같은 보완대책이 마련돼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바쳐 싸우신 광주 출신의 두 의병장의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의병장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도로명에도 이들의 의병 활동을 알리는 표지석조차 없다. 광주 북구 신안교 인근에는 두 의병장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진 도로명 '서암로'와 '설죽로'가 있다. '서암로'는 전대사거리~동운고가 구간으로 지난 1992년 10월 29일 서암(瑞庵) 양진여 의병장의 호를 딴 도로명이고, '설죽로' 는 일곡 동아아파트~신안 제1교 구간으로 2008년 11월 17일 양상기 의병장의 호인 설죽(雪竹)을 따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도로명에 대한 설명 간판이나 표지석이 설치돼 있지 않아 서암로와 설죽로가 의미하는 바기 무엇인지를 모르는 시민들의 대다수다.

광주 북구에 20여 년 이상 거주했다는 정모(56ㆍ여)씨는 "평범한 도로명 주소 아닌가요? 인근 동네 별칭이라던가"라며 "도로명에 대한 홍보가 없으니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역 대학생 백모(26)씨는 "옛 조상들의 호를 따 만들어진 도로명들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면서 "표지석이라도 있으면 지나가는 길에 보고 알았을텐데…"라고 말했다.

양씨는 "부자 의병장으로 알려진 양진여ㆍ양상기 의병장을 기리는 장소에 표지석 하나 없다는게 후손으로서 너무나 죄스럽다"며 "독립운동을 해 풍비박산난 집안이지만 두 의병장 할아버지만큼은 명예롭게 해드리고 싶다. 모든 걸 제쳐두고 나라를 위해 앞장 선 그들의 희생이 잊혀지지 않게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천 기자 ckim@jnilbo.com

양진여ㆍ양상기 의병장

서암 양진여(1860~1910) 연표

1860년 5월 31일

광주군 서양면 니동(현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출생

1908년 7월 20일

광주군 삼각산 죽청봉에서 거병, 의병대장에 추대

1908년 10월 26일

광주군 신촌 전투

1908년 11월 23일

광주군 대치 전투

1908년 11월25일

담양 추월산 전투

1909년 8월 26일

장성군 갑향면 행정리(현 담양군 대전면 행성리)에서 체포

1910년 5월 30일

대구 감옥에서 교수형 집행

설죽 양상기(1883~1910) 연표

1883년 10월 10일

광주군 서양면 니동(현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출생

1908년 5월

광주군에서 거병해 의병대장에 추대

1908년 12월 22일

동북군(현 화순군) 두면 삼지촌 전투

1909년 3월 14일

동북군(현 화순군) 외북면 서촌 전투

1909년 5월 17일

담양군 정면 덕곡리 전투에서 패전해 체포

1910년 8월 1일

대구 감옥에서 교수형 집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