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에 맞서 당당하게 견딘 숲에서, 동백을 만나다
[숲&나무이야기] 금오도 비렁길 숲
꽃 피우려 칼날 같은 바닷바람 감내한 상처
옥녀봉 선녀들 승천 못해 소나무되었다는
여수 직포마을 해안방풍방재형 비보숲 전설
꽃 피우려 칼날 같은 바닷바람 감내한 상처
옥녀봉 선녀들 승천 못해 소나무되었다는
여수 직포마을 해안방풍방재형 비보숲 전설
2017년 04월 07일(금) 00:00 |
금오도 비렁길에서 볼 수 있는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 |
아침 일찍 돌산 신기항으로 가서 금오도로 가는 배를 탔다. 아직 추운 탓에 탐방객들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차량과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 틈에 끼여 배를 따라오는 갈매기와 섬들을 품어 안은 바다를 만났다.
도시의 묵은 때들이, 확 트인 여수바다 달디 단 봄바람에 씻겨나간다. 오른쪽 화태도를 끼고 대횡간도 등대를 지나 나발도, 소두리도, 소횡간도를 바라보며 바다를 건너온 철부선은 금오도 여천선착장에 도착했다. 곧바로 이번 탐방코스 시작지인 직포로 향했다.
직포마을에서 해안방풍방재형 비보숲을 만났다. 아름드리 해송이 마을 앞쪽에서 달려드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마을 숲이다. 아쉽게도 나무에 대한 대접이 말이 아니다. 나무들과 이웃해서 집들이 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시멘트 포장은 너무 심하다. 나무들에 칭칭 감긴 다양한 줄들도 눈에 거슬린다.
1982년 12월에 여수시가 보호수로 지정했다. 표지판에 나무의 나이가 600년, 수고가 18m, 나무의 둘레가 220cm다. 보호수로 지정된 용트림을 하는 형상의 소나무를 포함해서 30년 이상인 소나무들에 대해 마을 숲 관점으로 다시 살펴보아야 될 귀중한 자원으로 보인다. 비보 숲을 이루는 수 십 그루의 해송들에 대한 조사와 보호가 필요하다.
섬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직포 해송림은 선녀들이 변해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여름날 옥녀봉에서 선녀들이 달밤에 베를 짜다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바닷가로 내려와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목욕을 하다가 승천하지 못하고 소나무로 변하였다는 애틋한 전설은 비보 숲이 허투루 할 수 없는 오래된 숲임을 일러준다. 이 전설을 주민들이 잊지 말고 기억하면 좋겠다. 마을 이름을 직포라 한 것도 이 전설과 관계가 있다고 하니, 주민들의 나무들에 대한 배려도 당연히 따라야 할 것이다. 이 솔 숲의 가치를 알고 있으면, 마을 차원에서 공유재로 보호해야 됨을 알 듯도 한데 쇠락해가는 공동체 정신이 안타깝다. 바람에 흔들리는 밧줄을 매달고 선 소나무들을 안아주고 쓰다듬다 발길을 재촉한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 초입이 마을 선착장이다. 식당 옆 산자락에 선 동백나무는 작은 꽃등을 달고 반긴다.
금오도에 거주하는 주민이 많을 때는 1만 6천 명 정도 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2천 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해안선 길이 64.5㎞로 섬의 지형이 자라를 닮았다 하여 큰 자라라는 뜻으로 금오도라 부르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소나무를 비롯한 동백과 구실잣밤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사철 푸른 숲이 검게 보인다 하여 ‘거무섬’이라 불렀다고 하고, 그 근거로 1872년 펴낸 <순천방답진> 지도에도 ‘거마도’라 표기되어 있는 것을 든다.
북쪽에 있는 대부산(382m)이며, 남쪽에 망산(344m), 동쪽의 옥녀봉(261m)이 비렁길의 가능하게 했다. 대부분이 암석해안이며, 자그마한 만과 갑이 발달해 비교적 해안선의 굴곡이 많다. 옛날에는 숲이 울창하여 사슴들이 떼를 지어 살아, 조선 고종 때 명성황후는 이 섬을 사슴목장으로 지정하여 출입·벌채를 금하는 봉산으로 삼기도 하였다. 주민들에 말에 의하면 고라니와 멧돼지의 개체수가 생각 외로 많아지고 있어서 농사를 지으려면 필히 울타리를 치거나 또 다른 방책을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아직도 고인돌군이 그대로 남아있는 섬에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도 거주민들이 있었음을 유추해보는 유물과 다양한 설화와 함께 민요와 민속놀이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금오열도의 바닷길은 왜구의 침입을 무수히 받는 전략상 중요한 목이였다. 왜구의 통로뿐만 아니라 이 길목은 해마다 불어오는 태풍이 통과지점이기도 했다. 제주도처럼 낮게 엎드린 집과 높은 돌담장이 힘센 바람에 맞서 살고 있는 섬사람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식당 뒤편 계단길을 따라 숲에 오른다. 호흡이 가쁘다. 비렁길 3코스는 동백을 비롯한 소사나무, 해송과 가시나무, 곰솔, 구실잣밤나무, 때죽나무, 노간주나무, 화살나무, 감탕나무, 광나무, 사스레피나무, 천선과나무, 흰새덕이, 돈나무, 멀꿀,, 털마삭줄, 송악, 백량금, 자금우, 모람, 콩짜개덩굴, 노루발, 산거울, 털머위 등이 보인다. 비렁길 숲은 생물다양성 부분에서 소중한 자산의 모태 부분을 차지한다.
금오도의 동백들은 가만히 그 꽃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꽃을 피우기 위해 칼날 같은 바닷바람을 감내한 당당한 응전이 보인다. 열이면 열, 모든 금오도의 동백꽃들에게는 훈장처럼 상처가 있었다.
바닷가 쪽으로 군락지를 이룬 소사나무의 풍경이 반짝이는 바다에 비쳐 눈부시다. 중간에 만난 구실잣밤나무는 아름드리 자태로 숲을 신화의 공간으로 바꾸고 새로운 상상을 불러오게 한다. 숲을 빠져 나오니 어느덧 해질 무렵이다. 주로 방풍나물을 키우는 마을에서 햇방풍을 수확하고 있는 어르신들께 한 봉지를 샀다.
숲을 걷는 내내 추웠던 지라 도다리 쑥국 생각이 간절했지만, 숲에서 만끽한 동백과의 조우와 점심때 먹은 문어라면으로 퉁치기로 하고 탐방을 마무리 한다. 여수사투리 ‘비렁’은 ’벼랑‘을 의미한다. 금오도 비렁길에서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를 문득 생각한다. 벼랑 끝에서 다시 환한 봄으로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글ㆍ사진=김경일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총장
금오도의 '웃는 토종 돌고래' 상괭이
특유의 미소 덕분에 '웃는 돌고래'로 부리는 상괭이는 세계적인 국제멸종위기종으로 보호되고 있다. 흑산도에 유배 왔던 정약전이 <현산어보>에도 '해돈어'로 기록해놓았던 토종 돌고래 상괭이. 지금 우리 바다 인근에서 우리의 토종 돌고래인 상괭이가 보기 어렵다.
3만 5천여마리가 남아있다고 추정되는 상괭이는, 슬프게도 2012년 겨울 새만금 쪽에서 249마리가 방조제에 갇혀 얼어 죽었다. 해마다 그물에 걸리거나 바다쓰레기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 하는 가련한 바다 생명. 거기에 더해 그들의 먹이가 되는 농어나 숭어가 사람들에게 남획되어서 먹이피라미드가 깨지거나 하면 상괭이를 만나기가 더 힘들 듯 싶다.
생태문화학자인 고 탁광일 박사는 연어가 사는 캐나다 벤쿠버 뱀필드의 온대우림과 연어와의 관계를 꿰뚫어 말했다.
캐나다 벤쿠버 후에이앗(Huu-ay-aht)원주민들은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았다. 후에이앗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숲과 연어와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숲이 파괴되면 바다에서 범고래가 사라진다고 믿었다. 숲이 파괴되면 모천으로 회귀한 연어가 산란을 하지 못해 연어새끼들이 태어나지 않게 되고, 바다에서는 연어를 잡아먹는 범고래 개체수가 줄어든다는 것을 그들의 오랜 삶속에서 전승되는 지식이 된 것이다.
쓰러진 나무 위에 새 묘목이 자라고, 강에 부유하는 부러진 나뭇가지 밑에 연어의 보금자리가 생기는 순환과 생명의 조화를 보면서 인디언들은, 자연과 인간 즉, 모든 것은 하나(Hishak ish ts'awalk)라 말한다. “숲, 개울, 연어, 바다가 하나의 생명 고리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저절로 깨달았다고 전했다.
상괭이와 그들이 살고 있는 바다와 섬들. 그 섬과 해안의 숲들의 운명이 우리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자연과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획과 무분별한 포획으로 수난을 겪고 있는 한국의 인어 상괭이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금오도.
섬은 비렁길 숲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권역에 포함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근에 안도에도 최근에 상산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여 탐방객을 부르고 있다.
그 탐방객들에게 비렁길 가이드에 '금오도 상괭이' 스토리를 첨부하면 더 풍성한 가이드가 될 수 있겠다.
김경일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총장
무등산의 상징 '털조장나무'
깃대종이란?
환경보전의 정도를 나타내거나 복원의 증거가 되는 한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하는 상징 동, 식물종이다.
깃대종은 1993년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생물 다양성 국가연구에 관한 지침'에서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방안으로 제시된 개념이며 특정 지역의 생태, 지리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야생 동식물로서 사람들이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종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깃대종인 반달가슴곰과 히어리를 들 수 있다. 가장 늦게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무등산 역시 식물 깃대종으로 털조장나무와 동물 깃대종으로 수달을 선정하였다.
무등산국립공원의 식물 깃대종인 털조장나무는 녹나뭇과에 속한 낙엽 관목으로 높이는 3미터 정도이며 타원형 잎이 어긋나고 양면에 털이 있다. 4월에 노랗게 꽃이 피고, 열매는 10월에 검게 익고, 학명은 Lindera sericea이다. 국내 자생지는 무등산을 비롯한 광주 인근의 조계산, 모후산, 옹성산, 천봉산, 동악산, 용암산 등의 산지 계곡가 및 숲 가장자리에 드물게 자란다고 보고되고 있으나 최근에 지속적인 탐사와 모니터링 결과 일부 산에서 무등산에 자생하는 개체 수보다 더 많은 군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리산 깃대종인 히어리가 보호종에서 벗어나 자생 범위와 그 개체를 늘려가듯 털조장나무 역시 많은 개체를 만날 수 있다는 건 숲을 찾아가고 보전하며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더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털조장나무 꽃이 필 때는 생강나무와 유사하지만, 꽃이 주로 가지 끝에 달리는 점, 그리고 촛불을 연상 시키듯 꽃과 잎이 동시에 나오는 차이점과 줄기가 녹색이고 흑갈색 무늬가 발달하는 것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자생지 현지의 주민들은 털조장나무를 생강나무로 부르고 있다. 아마도 털조장나무와 생강나무의 개화 시기나 꽃의 색깔과 생김이 비슷하여 혼동하기 쉬운 까닭에 쉽게 만날 수 없었던 털조장나무 역시 산속 마을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생강나무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리 불리고 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털조장나무는 녹나뭇과의 식물로써 가지가 푸른빛을 띠고 있음이 특징이다. 몸집보다 유난히 시원스런 검투사의 칼을 닮은 겨울눈, 그 잎눈을 둘러쌓듯 2~4개의 꽃눈이 감싸고 있다. 이파리도 가지에 비해 넓게 발달하였으며 잔가지 또한 시원스럽게 뻗어난다.
대부분의 녹나뭇과의 나무들은 은은한 향이 깊어 마음을 다스려 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치유제의 식물로 다가오기도 하고 예로부터 장유유서를 받드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서 어른들을 공경하는 의미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지팡이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지팡이를 만들었던 나무들이 대부분 녹나뭇과의 나무들이다.
이로운 식물들의 방어 물질을 피톤치드라고 성분을 검출하거나 규명하지 않아도 이미 몸으로 먼저 체득하고 사용하였으니 얼마나 지혜로운 삶이었겠는가? 4월 촛불처럼 산을 밝히는 털조장나무꽃. 그 화려한 촛불잔치를 만끽하는 즐거움을 찾아 떠나보자.
글ㆍ사진=허정균 숲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