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에 반하고 수육에 놀라고
음식이야기 순천 웃장 국밥
국밥시키면 수육은 덤
돼지 머리 푹 삶아 국물
호객행위없는 국밥골목
2017년 02월 17일(금) 00:00
순천 웃장은 참 인심 좋은 곳이다. 웃장에는 '시장이 다 그렇지'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일단 다녀오고 나면 감탄하게 만드는 특별한 골목이 있다. 웃장 안에 조성된 상설시장에는 국밥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줄줄이 붙어 모락모락 연기 뿜는 가마솥을 내걸고 있는 풍경이 장관이다. 복스럽게 웃고 있는 돼지머리가 즐비하고 먹음직스런 고기와 순대가 도열해 있는 곳, 오늘은 웃장 국밥골목으로 안내해 볼까 한다.

웃장 국밥의 특징은 돼지 머리를 이용해 국물을 낸다는 것이다. 푹 삶은 머릿고기는 총총 썰어 국밥에 얹는다. 곱창이나 선지가 들어가는 일반 국밥과 달리 국물 맛이 깔끔하고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도 덜해 뒷맛이 개운하다.

사실 웬만해선 국밥이 맛없기도 힘들다. 하여 국밥 맛으로 따져 내가 2등이라고 인정하는 시장도 없을 듯하다.

순천 웃장 골목의 식당은 집집마다 국밥의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다. 콩나물이나 시래기를 넣어 주는 곳도 있고, 따로국밥을 내기도 한다. 국밥에 얹어 나오는 다대기 양념도 집집이 맛이 다를 것이다.

그런데 몇 가지 같은 점도 있다. 웃장의 국밥골목에는 왁자한 시장골목의 호객행위도 없고, 모두 비슷한 크기로 점포이름을 내걸었으며, 심지어 메뉴와 복장까지 통일한 '아짐'들이 그저 뚝배기에 토렴하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국밥을 시키면 푸짐한 고기접시가 먼저 나온다. 웃장 국밥집에서는 다 그렇다. 참 인심 좋은 곳이다. 사정 모르고 온 사람들은 황당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 내가 주문을 잘못했나, 다른 테이블로 갈 걸 잘못 가져왔나. 그도 그럴 것이 허드렛고기가 아니라 제법 실속 있게 차려진 '공짜' 수육이 눈앞에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혼자 국밥을 먹으러 갔다가 수육 안주더라는 말을 하실까 미리 밝힌다. 수육은 두 명 이상이 국밥을 시켜야 제공된다. 그럼 혼자서는 영영 못 먹어 본다는 건가? 아니다. 말하지 않았는가, 순천 웃장은 참 인심 좋은 곳이라고.

혼자서 국밥을 시키는 이들에게는 국밥에 들어가는 고기의 양이 배가 된다. 따로 접시에 담기지 않지만 그에 상응하는 양의 인심이 국밥 안에 담겨 있다.

애초에 국밥은 장터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먹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갈 길 바쁜 보부상들이 간단하고 빠른 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던 주막이나 식당에서 빨리 나오고 먹기 쉽도록 개량된 한 끼 식사가 국밥이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밥과 국이 만들어낸 간단하고도 명료한 음식, 국밥 한 그릇이면 속이 든든해진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국밥 먹으러 오는 사람 속은 국밥집 주인이 안다. 때문에 따순 밥 먹이고픈 마음으로 토렴을 하는 주인장의 손길이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토렴을 하면 밥에 간이 베어나고 국물을 뜨끈하게 낼 수 있으니….

국밥 이야기를 하니, 황지우의 '거룩한 식사'와 복효근의 '눈 오는 날 콩나물국밥집에서'라는 시가 떠오른다. 두 편을 나란히 인용해 보기로 한다.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중략)

몸에 한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황지우 ?거룩한 식사? 일부



눈이 뿌리기 시작하자/ 나는 콩나물국밥집에 혼자 앉아/ 국밥을 먹는다 입을 데는 줄도 모르고/ 시들어버린 악보 같은 노란 콩나물 건더기를 밀어넣으며/ 이제 아무도 그립지도 않을 나인데/ 낼모레면 내 나이가 사십이고/ (중략)/국밥 한 그릇이 희망일 수 있었던/ 술이 깨고 술 속이 풀려야 할 이유가 있던/ 그 아픈 푸른 시간들이 다시 오는 것이냐/ (하략)

- 복효근 ?눈 오는 날 콩나물국밥집에서? 일부



진하게 우러난 국물 같은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득 베어있는 시다. 각기 다른 이들의 삶이지만 국밥 한 그릇 앞에서는 같은 무게로 남는 듯하다.

웃장 국밥에는 웃장이, 웃장의 인심이, 웃장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오가는 장터, 고단한 삶을 풀어내는 곳, 그 떠들썩한 풍경 속에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의 사랑이 있다. 순천 웃장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 불타는 금요일을 밝혀줄 소주 몇 잔, 혹은 시들한 월요일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반주라도 한잔 걸쳐보는 건 어떨까.


웃장 0ㆍ5일 아랫장은 2ㆍ7일 들어가면 장날
순천 재래시장 이야기

순천에는 웃장과 아랫장, 역전장, 중앙시장 등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웃장은 0과 5, 아랫장은 2와 7이 들어가는 날에 5일장이 선다. 그러니까 웃장과 아랫장은 상설시장이면서 5일장도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5일장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장시(場市)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장시는 16세기 초부터 형성되기 시작했고 18세기가 되면 전국에 1000 개가 넘게 개설된다. 지역마다 하나의 교역권을 형성하여 상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시에서는 보부상의 활동이 중요했다. 보부상은 각종 물품을 등에 지고 이 장에서 저 장을 돌며 상품 유통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조선 후기 순천의 읍성에서도 '부내장'이라 하여 2일과 7일에 장이 열렸다고 한다. 해안을 끼고 있으면서 평야까지 확보한 순천의 지형적 특징에 맞게 온갖 곡식과 해산물, 기타 수공업품이 유통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시장이 순천 시내 중심지를 장악했다. 기록에 의하면 남문밖 시장의 본전다방에서 군청까지 골목이 짚신점, 지금의 중앙시장은 생선 시장, 경찰서 앞 일대가 담배전, 구법원 일대가 옹기전과 마포전이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러 논란이 생겼는데, 일단 오밀조밀 들어선 상가들로 인해 중심가가 비좁고 복잡해졌다. 또 각종 물품이 유통되고 사람이 모여들어 위생상의 문제도 생겼다. 그래서 1928년에 시장을 북문 밖으로 옮기는 사업을 벌이는데 이 결과로 지금의 웃장과 아랫장이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0, 2, 5, 7로 끝나는 날이 되면 순천 시내가 북적인다. 하지만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 번잡스러움은 기꺼이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곳에는 사람 사는 내음이 진동하고 부딪치는 어깨끼리 오가는 정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