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유럽의 오늘을 보다
2016년 12월 28일(수) 00:00 |
폴란드 주재 대사로 이곳에 온 지도 어느새 두 달이 되어간다. 바르샤바의 도심에도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나는데, 부쩍 추워진 날씨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며 어느새 연말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독실한 카톨릭 국가인 폴란드에서는 성탄절을 매우 경건한 마음으로 맞이한다고 한다.
폴란드는 중부 유럽지역에 위치하고 있지만, EU(유럽연합)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국이므로 유럽의 정치경제적 풍향을 이곳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현재의 유럽은 군사안보적으로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느라, 경제사회적으로는 국내실업과 경기침체, 테러와 난민문제에 대처하느라 여념이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1월에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에 대해 어떠한 정책을 수립할 것인지도 공통의 관심사이다. 현재의 유럽은 다차원적으로 불확실한 환경에 처해있는 셈이다. 영국은 EU 탈퇴를 이미 결정하여 이행절차를 밟고 있고, 이곳 폴란드에는 작년 말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이 집권하여 EU 통합보다 '폴란드 우선' 정책을 시행하면서 프랑스, 독일 등 EU의 주요국들과 긴장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9일 베를린에서 발생한 트럭 테러는 난민수용 정책에 반대하는 극우세력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베를린 테러범이 수년전 튀니지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태리로 온 난민 출신이라는 데 대해 유럽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쉽게 상상이 간다. 무엇보다도 내년 선거를 앞두고 독일의 극우 정당이 이런 상황을 정략적으로 십분 활용할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어찌 보면, 지금 유럽 대륙은 EU의 당초 취지대로 통합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분열과 각자도생을 택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의 EU 탈퇴 결정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가 미래의 EU를 이끌어야 하는데, 국내의 경기침체와 테러 공포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유럽은 물론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러시아는 2014년 초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한 이래 NATO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국가들과 긴장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여가고 있는데, 위와 같은 유럽 국가들의 복잡한 국내사정으로 내부 단합이 약화 내지 와해되는 상황은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전략적 셈법에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러시아를 견제하는 일은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동맹인 NATO가 수행해야 할 몫인데,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사이에 위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폴란드로서는 국가안보 문제에 대해 서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폴란드가 차기 미국 행정부의 NATO 정책 방향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안보 이익과 경제 이익은 주권국가가 추구해야 할 양대 핵심목표인데, 이 중에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은 안보와 국방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폴란드가 러시아의 계속되는 안보위협에 다방면으로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과 위협에 대응하여 우리나라도 양자 및 지역 차원은 물론, 유엔 안보리 등 다자 차원의 全方位的인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성주 주 폴란드 대한민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