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해학으로 승화시킨 남도의 굿판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빈지래기들의 굿판
2016년 08월 19일(금) 00:00
초분은 일종의 풀 무덤으로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짚이나 풀로 엮은 이엉을 덮어 두었다가 2~3년 후에 매장하는 섬 지역 전통 장례풍습이다. 사진은 청산도 주민들이 초분을 재현하고 있는 모습. 완도군 제공
육자배기 한 소절 흐를만한 개펄에 웅성웅성 누군가가 운집한다. '빈지래기'들이다. 무슨 일이 있나보다. 굿판이다. 그것도 큰 굿판이다.

내용을 들어본다. 빈지래기한테 병이 들었다. 화랑기(화랑게)에게 가서 점을 본다. 꼬막귀신이 들렸다는 점괘가 나왔다. 당골을 불러 굿을 한다.

바지락 아주머니는 굿 의뢰자다. 손을 싹싹 비비며 병이 낫기를 빈다. 본격적인 굿판이 벌어진다. 먹거리 준비는 방기(방게)가 한다. 운조리(망둥어)가 나와 피리를 분다. 짱뚱어는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징을 두드린다. 대롱은 북을 친다. 쏙대기가 장구를 친다. '뻘떡기(돌게)'는 겅중겅중 춤을 춘다. '갈포래(갈파래)'는 넋당삭을 말아 영정과 부정을 내가신다.

고개를 돌리면 굿판에 으레 나타나는 주정꾼이 보인다. 바로 소라다. 어떤 굿판이건 나타나는 감초다. 막걸리 한 사발을 거나하게 들이붓고 제 흥에 겨워 굿판을 휘젓고 다닌다. 재변(변고)도 이런 재변이 없다.

술을 많이 먹어서인지 입이 비틀어졌다. 그래서 소랑삼춘이다. 이상한 것은 이 주정꾼의 역할이 굿판을 훼방 놓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

거나하게 취해 이사람 저사람 손을 잡아 굿판 안으로 끌어들인다. 또는 굿판 안으로 들어가 엉터리 사설을 늘어놓는다. 때때로 바가지를 등에 넣고 나와 곱사춤을 추기 시작한다. 진도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빈지래기타령' 한 장면이다. 노래는 판소리 단가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민요로 불린다.

병이났네 병이 났네/ 빈지래기가 병이 났네
화랑기한테로 점하로 간께/ 꼬막 삼촌이 들었다고
방기는 밥을 하고/ 반지락 아짐씨 손비비고
운조리는 나와 피리불고/ 짱뚱이는 깡짱 뛰어/ 징을 두리뎅뎅 울리고
대롱은 북을 치고/ 쏙대기할놈은 장구치고
뻘떡기는 춤을 추고/ 갈포래는 넋을 몰아/ 영정부정을 내가실제
물밑에 소랑삼춘은/ 막걸리 한잔에 횟틀어졌네
요런 재변이 또 있냐

장면이 보이는가? 그렇다. 바로 빈지래기들의 씻김굿 판이다. '빈지래기'타령에 나타나는 캐릭터들은 화랑게, 방게, 바지락, 운저리, 짱뚱어, 대롱, 쏙대기, 뻘떡게(돌게), 갈파래, 소라 등이다. 이들 모두 조간대에서 서식하는 해물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해물유희요라는 민요로 분류하였다. 짐작하겠지만 이 캐릭터들은 조간대 어업 중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어종과 해류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개 개펄에서 서식하거나 관련된 해물들이다.

남도지역의 해물유희요 중 대표적인 노래다. 이런 유형의 노래가 하나 더 있다. 완도지역에서 전승되는 '오징어타령'이다. 말인즉 병이 나고 굿도 했는데 오징어라는 놈이 죽었던 모양이다. 죽었으니 상례를 치러야 할 것 아닌가. 상례를 치르는 장면이 해학적으로 장황하게 펼쳐진다.

죽었구나 죽었구나/ 오징에랄 놈이 죽었구나
오징에랄 놈이 죽었는디/ 부목 갈이가 전히 없네
까잘미랄 놈 너 가거라/ 깔방석 깔란께로 못 가겄소
간제미랄 놈 너 가거라/ 호방성 들란께로 못 가겄소
서대랄 놈 너 가거라/ 휘장배 두를란께 못 가겄소
꽁치랄 놈 너 가거라/ 영정대 설란께로 못 가겄소
짱에랄 놈 너 가거라/ 쟁앳대 설란께로 못 가겄소
우럭할 놈 너 가거라/ 울음을 울란께 못 가겄소
운저리랄 놈 너 가거라/ 춤을 출란께 못 가겄소
뻘덕기랄 놈 너 가거라/ 춤을 출란께 못 가겄소
도미랄 놈 너 가거라/ 설소리 줄란께 못 가겄소
순팽이랄 놈 너 가거라/ 나눠멕이 할란께 못 가겄소
고등에랄 놈 너 가거라/ 돼지 잡을란께 못 가겄소
숭에랄 놈 너 가거라/ 장고 칠란께 못 가겄소
문에랄 놈 너 가거라/ 벵풍 칠란께 못 가겄소
낙지랄 놈 너 가거라/ 연푸 간께 못 가겄소
갈이 없네 갈이 없네/ 부목갈이가 전히 없네
줄은 빼서 닻줄 삼고/ 먹통은 빼어서 만사 씻고
재널을 잡어타고/ 칠선바닥을 건넨구나/ 어이가리 넘자 어화요

오징어타령에 나오는 캐릭터는 오징어, 가자미, 간재미, 서대, 꽁치, 장어, 우럭, 운저리(망둥어), 뻘덕게(돌게), 도미, 순팽이, 고등어, 문어, 낙지 등이다. 몇 가지 버전이 전승되어 온다.

어종이 약간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조기, 대구, 갈치, 숭어, 병치 등이 나타나는 버전도 있다. 개구리가 등장하는 버전도 있다.

빈지래기타령이 조간대의 해물을 대상으로 했다면 오징어타령은 조간대와 조하대를 아우르는 어종을 대상으로 했다. 굳이 해석하자면 '안티 플롯적 구성'을 취하면서 초상 장면을 열거한다.

질병이나 죽음이 왜 슬프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무엇일까?

이것은 실제 남도지역에서 연행되었던 병굿이나 다시래기(밤다래), 씻김굿 등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들이다. 스스로를 '빈지래기'에 투사시키고 연행 장면을 이 노래에 담아냈던 것이다.

그렇다. 빈지래기나 오징어는 남도 사람들 자신이다. 해물캐릭터들의 투사 주체인 섬사람들은 죽음을 하나의 굿판으로 승화시켰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수많은 죽음들을 본다. 우리는 그 죽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조간대 개펄 위에 쏟아지는 햇살, 혹은 천개의 모양으로 물결을 만들어내는 조하대의 갯바람이 전해주는 '빈지래기'와 '오징어'의 굿판 이야기, 즉 남도 사람들의 굿판 이야기에 주목할 이유다.

남도민속학회장





[남도인문학 TIP] '빈지래기'는 주 어종 아닌 허드레 어종

'빈지래기타령'에서 나오는 빈지래기는 '빈지럭' 혹은 '빈지럭지'라고 한다. 주 어종이 아닌 허드레 어종이라는 뜻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비린내가 나는 어종으로 이해하면 좋다.

이 말은 국어사전이나 우리말 갈래사전, 혹은 전남방언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다. 순수하고 전통적인 남도 향토어다.

그런데 방언사전에 기록되지 않은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사용처는 전남권 전역이다. 부르는 사람들에 따라 한 종의 물고기를 지칭하기도 한다. 하찮은 종의 물고기군으로 쓰인다는 점은 동일하다. '전어' 혹은 '되미(대미)'라는 물고기를 '빈지래기'나 '빈지럭지'로 표현하는 사례도 많다. '빈지레기타령'은 진도지역에서 해방 후부터 판소리 강습을 하던 이병기씨가 작창 했다고 전해진다. 진도 '소포리노래방'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다. 완도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오징어타령'은 'MBC민요대전'을 포함 현재 세 곡 정도가 채록 및 채보되어 있다. '빈지래기타령'과 마찬가지로 해물의 형태나 소리를 빗대어 노래했다.

예컨대 갑오징어의 석회질 뼈인 '갑'은 넓다는 의미에서 '널'에 비유되었다. 등판의 외투막(봉판막)은 부고장으로, 발은 '줄'에 비유되었다.

갈치와 꽁치는 길고 넓적한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채'나 '대'에 비유되었다. 문저리(망둥어)는 긴 형태와 빡빡거리는 소리 때문에 피리나 젓대에 비유되었고 병치(병어)는 곡선 형태 때문에 조릿병에 비유되었다.

지면상 다 쓸 수는 없지만 이렇듯 모양과 소리에 빗대어 씻김굿판과 상례판을 풍자했다는 점에서 해물유희요의 의미가 있다. 해물유희요가 조간대와 조하대의 어류 등을 통해 풍소성을 지향하는 이유가 있다. 말놀이와 말장난을 통해 정서적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민요의 말하기 기능을 통해 동류 집단끼리의 의식을 공유한다. 이 단순한 말하기 기능 속에 그들의 철학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남도사람들의 풍소적 삶의 양상들을 돌아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