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뛰노는 도랑이 되살아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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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아이들 뛰노는 도랑이 되살아나길
  • 입력 : 2014. 02.24(월) 00:00

한국인에게 한정식하면 우선 떠오르는 지역은 아마 우리 이웃에 있는 전주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어느때 부터인가 전주한정식 상차림에 들어가는 30여 가지 반찬 중 한 가지가 바뀌게 됐다. 생활하수 등으로 전주천이 오염되면서 개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모래무지가 자취를 감추게 되자 모래무지찜을 대신하여 대합구이가 상차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전주천의 사례는 우리 주변 실개천과 도랑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랜 세월 남도의 젖줄이자 상징이었던 영산강의 현주소도 전주천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산업화로 인해 강의 본류는 물론 지류와 소하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수질오염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수질은 전국 최하위 수준으로 1994년 몽탄취수장의 폐쇄와 더불어 상수원으로서의 기능을 마감하였으며, 농업용수로만 제한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영산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폐수배출시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공공하수처리시설 설치와 하수관거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좀처럼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87개의 지류ㆍ지천의 수질을 조사한 결과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5급수 이하로 전락한 곳도 다섯 군데나 나타났다. 그렇다면 영산강이 생명의 강으로 되살아날 희망은 없는 것일까. 아마도 그 해답은 기본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모든 강은 그 근간을 이루는 하천들과 마치 혈관처럼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대동맥과 작은 혈관들의 관계처럼 강에는 본류가 있고 본류로 흐르는 몇 개의 지류가 있다. 지류는 지천이 모여 형성되고, 지천은 또 다시 마을을 돌아 나오는 실개천과 그 실개천을 구성하는 작은 도랑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영산강을 생명의 강으로 부활시키려는 노력은 먼저 각종 쓰레기와 오폐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개천과 도랑을 되살리는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40대 이상의 세대들에겐 누구나 마을을 흐르는 개울에서 멱을 감고 족대로 물고기를 잡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산업화가 가져온 풍요로움으로 배고픔을 잊게 되었지만 디지털시대의 속도 전쟁 속에서 아날로그의 추억은 점차 아련한 기억의 뒤편에 흐릿하게 비칠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마을을 흐르는 실개천과 도랑에서의 추억은 색 바랜 사진첩이나 나보다 나은 감수성을 지닌 작가의 글 속에서나 무뎌진 감각으로 읽게 될지 모를 일이다. 도랑과 실개천을 되살리는 것은 단지 우리의 메마른 정서를 채워주고 잃어버린 추억을 되찾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을 벗 삼아 놀면서 감수성을 키우고 미래를 꿈꾸며 창의력을 개발하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영산강에서는 퇴적토를 준설하여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등 강의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지금까지 강의 환부를 수술하여 썩은 피를 제거한 것이라면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다음 단계는 실개천과 도랑을 살려 맑은 물이 강으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산강유역환경청에서는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영산강을 생명의 강으로 되살리는 '마을 도랑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무안천 등 3개 소하천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실개천과 도랑에 대한 정화활동을 추진하고 향후 지자체와 성과를 공유하며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생태습지가 조성되고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정비된 영산강에 맑은 물이 흐르는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면 주민들에게 더욱 편안한 쉼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적 공감대와 참여가 없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마을 도랑 살리기'도 특정한 누군가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며 성공의 열쇠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 아이들에게 영산강의 역사는 교과서에서나 접하는 단편적 지식으로 변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홍봉 영산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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